아미스타드 Amistad (1997)

2010.02.18 22:43

DJUNA 조회 수:5312

감독: Steven Spielberg 출연: Djimon Hounsou, Matthew McConaughey, Morgan Freeman, Anthony Hopkins, Nigel Hawthorne, David Paymer, Pete Postlethwaite, Stellan Skarsgård, Razaaq Adoti, Abu Bakaar Fofanah, Anna Paquin, Tomas Milian, Chjwetel Ejiofor, Derrick N. Ashong, Geno Silva

1.

1839년, 쿠바에서 출발한 노예선 아미스타드에서 선상 반란이 일어납니다. 선원들은 두 명만 빼고 모두 살해되고 흑인들이 배를 차지하지만 그들에게는 항해 능력이 없죠. 배는 어찌어찌해서 코네티컷에 도착하고 반란을 일으킨 흑인들은 체포됩니다. 여기서부터 미국과 스페인, 남부와 북부, 노예 해방론자들과 지지자들이 얽힌 골치아픈 재판이 시작됩니다...

2.

스필버그는 강한 드라마를 원할 때 종종 역사를 끌어들이는데, [아미스타드]도 그런 영화들 중 하나로 분류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여기에 대해 빈정거릴 생각은 전혀 없어요. 역사책이 효과적인 스토리들의 원천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요. 적어도 우리가 '기억하는' 역사적 사실 또는 배경이란 분명 보통 이상으로 강렬한 것들이죠. 디킨즈의 [두 도시 이야기] 같은 걸 생각해보세요. 바로 그런 것들이 역사적 사실의 이해나 해석보다 역사 소설들의 상업적 가치를 유지시키는데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아미스타드]가 과연 그런 이야기인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미스타드] 사건에는 적절하게 극화시키기엔 조금 어려운 부분이 발견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사건 자체는 강렬하고 인상적인 장면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렇게 쉽게 잊혀진 것이 불공평하게 느껴질 정도로 상당히 중요하게도 보이고요. 하지만 스필버그가 하고 싶어하는 고전적인 드라마의 재료가 되는 데에는 약간의 문제점이 있습니다.

일단 [아미스타드] 사건이 전혀 다른 성격의 두 이야기로 나뉘어져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군요. 첫 번째는 싱케이가 이끄는 아미스타드의 흑인 집단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부분은 간단하고 강렬하며 명료합니다. 그들은 부당하게 구속된 자유인이며 그들은 그들의 당연한 귄리인 자유를 되찾기를 원합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아미스타드호와 반란자들의 소유권에 대한 재판으로, 이 부분은 여러 이익 집단이 얽힌 상당히 정치적인 이야기입니다.

두 이야기 다 흥미진진합니다만, 이 둘을 엮는 것은 보기만큼 쉽지 않습니다. 싱케이가 노예선의 끔찍한 이야기로 우리를 이끌 때, 관객들은 강하게 반응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미국 법정에 섰을 때 변질되기 시작합니다. 물론 영화는 로저 볼드윈의 심적 변화와 존 퀸시 아담즈의 등장으로 '소유권'을 떠난 인권과 자유에 대한 메시지로 발전하지만, 그건 결국 미국과 미국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프리카인인 싱케이의 투쟁이 엉뚱한 나라의 엉뚱한 사람들의 싸움에 말려들어 엉뚱한 상징이 된 셈이지요. 그 결과 싱케이를 엔진으로 시작한 이야기가 이상한 방향에서 종결지어졌어요. [아미스타드]의 제작팀들은 아미스타드 사건을 또 하나의 미국 신화로 만들 생각이었겠지만 아무래도 이 영화는 조금 방향이 빗나간 것 같습니다.

3.

아까도 말했지만 싱케이는 이 영화에서 가장 믿을만한 기둥입니다. 적어도 그와 노예선의 참사가 스크린에 등장할 때 영화는 힘을 얻고 아주 쉽게 관객들을 끌어들입니다. 한마디로 이 영화에서 가장 잘 된 부분입니다.

그 다음으로 흥미진진한 부분은 싱케이와 로저 볼드윈과의 관계 묘사입니다. 스필버그는 이 영화에서 멘데어와 영어, 스페인어를 뒤섞고 적당히 자막을 삭제해서 언어의 도가니로 만드는데, 이런 의사소통의 불능 상태에서 싱케이와 볼드윈이 서서히 대화를 시도하는 장면은 정말 재미있어요. 조금만 더 디테일에 신경을 썼으면 훨씬 좋은 장면이 되었겠지만 이 정도로도 충분히 좋고 '자유의 절규' 다음으로 중요한 [아미스타드]의 주제를 만들어냅니다.

4.

보편적 자유와 평등이라는 당연한 개념이 이처럼 받아들여지기 힘든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긴 만약에 저희가 당시 남부 지주쯤 되는 위치였다면 머리 속에서 아무리 '기본 인권과 자유'가 메아리쳐도 적극적인 노예해방론자가 되는 데에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을 겁니다. 아무리 당연한 개념이라도 대부분은 경제적, 정치적 현실 속에 짓눌리기 마련이니까요. '도덕적으로 옳기 때문에' 한 사회의 경제 구조를 송두리째 뒤집어엎는 것이 여러분에겐 쉬울 것 같나요? 천만에요. 여러분의 상당수는 어떻게든 자기 논리를 비비꼬아서 그 제도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할 겁니다.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지요.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재선을 시도하는 대통령이라면 나라 절반의 요구를 무시할 수도 없을 겁니다. 물론 이 영화의 반 뷰렌처럼 3권분립까지 무시해가며 관여한다면 문제가 심각하겠지만요.

아미스타드 사건이 이리 오래 끌었던 것은 순전히 이런 정치적 이유 때문이지, 법적인 문제나 인권 문제의 재인식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사실 아미스타드 재판 자체는 너무나도 단순해서 싱거울 정도입니다. 법적인 문제점은 제1심에서 볼드윈이 간결하게 설명했지요. [아미스타드]의 흑인들은 불법행위에 의해 노예가 된 것이므로 출신지만 증명하면 그들은 무죄입니다. 그리고 정말로 불법행위의 근거가 되는 문서가 발견되고 여러 다른 경황 증거들이 그 증거를 보충하고 있으니 이처럼 자명할 수가 없지요. 재판장 교체나 상고 정도로 판결이 바뀔 일은 아니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재판이 대법원까지 올라갔으니 정말 세상은 간단한 게 없지요(사실 반 뷰렌도 대충 남부의 비위나 맞출 생각이었겠지 싱케이 일행이 패소할 것이라고 믿지는 않았을 겁니다. 정치가들은 정말 골치 아프겠어요.)

5.

[아미스타드]는 개봉 이후 여러 논쟁거리를 제기했는데, 그 중 가장 중심에 있는 것은 스파이크 리가 주장한 것처럼 과연 백인 감독의 영화가 흑인의 이야기를 올바르게 이야기 할 수 있는가였습니다. 원칙만 따진다면, 그리고 개별 영화만 따진다면, 백인 감독이라고 흑인 이야기를 못 만들 이유는 전혀 없죠. 게다가 이 영화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13년 동안 죽어라 뛰었던 사람은 스필버그가 아닌 데비 알렌이었잖아요. 하지만 스필버그가 아닌 어떤 흑인 감독이 이 영화를 만들었다면(그리고 우연히 그 영화가 지금 만들어진 영화와 아주 똑같았다고 해도) [아미스 타드]를 둘러싼 역사 논쟁은 이처럼 심하지 않았을 겁니다. 사실, 이런 논쟁은 대상이 되는 영화만큼 원칙과 일반론에 지배되기 마련이니까요.

많은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아미스타드]가 실제 역사에 당의를 입혔을까요? 그런 주장은 설득력이 있습니다. 일단 존 퀸시 아담스가 대법원에서 한 연설이 영화에서처럼 인권과 자유를 옹호하는 감동적인 것이 아니었답니다. 아담스는 싱케이를 자기 집에 초대한 적도 없다고 하고요. 이것말고 더 있겠지만 이 정도만 해도 '흑인의 친구인 백인 자유주의자들'을 지나치게 강조했다는 말을 듣는 게 당연하죠. 하지만 영화 속에서는 상당한 비중으로 묘사되는 시어도어 조드슨이 완전히 가공인물이라는 걸 생각하면, 싱케이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결국 그 백인 자유주의자들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할 수 밖에 없네요.

하긴 그 사람들에게 조금씩 냉소적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스필버그도 싱케이 일행이 갇힌 감옥 앞에서 찬송가를 불러대는 노예해방론자들을 다소 희극적으로 묘사하지요. 아미스타드의 흑인들은 그들을 '슬픈 광대'들이라고 묘사하는데 정말 그렇게 보입니다. 백인 노예해방론자인 태판이, '우리에게 순교가 필요하다'며 흑인들이 죽는 게 나을 지도 모른다고 말할 때, 그는 마음없이 머리만 때굴때굴 굴리며 세상을 자신의 생각 안에 끼워넣는 그 수많은 사람들의 샘플이 됩니다.

하긴 남의 일이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바로 그 때문에 그 선량한 사람들이, 그들이 해낸 수많은 일들과 좋은 동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딘가 미심쩍어 보이는 것이겠지만.

6.

스필버그는 이미 [컬러 퍼플]에서 흑인들의 이야기를 다루었지요. 그 작품이 성공적이었는가 아니었는가는 간단히 말할 수 없지만, 적어도 그가 그 영화에서 흑인 배우들을 카메라로 묘사하는 방법에 대해 상당히 공들인 연구를 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사실, 이건 상당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대부분 미국 영화의 촬영 트릭들은 백인 배우들에 맞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하얀 피부를 가진 사람과 검은 피부를 가진 사람이 전혀 다른 피사체임은 말할 필요가 없지요. 이들을 묘사하는 데에는 각각 다른 어휘가 필요한 겁니다.

[컬러 퍼플]은 이런 면에 있어서 꽤 성공적이었고 그가 [아미스타드]에서 그런 실험을 조금 더 발전시켰다고 생각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특히 도입부를 봐주세요. 싱케이가 노예선 안에서 필사적으로 못을 뽑아내 는 장면을요. 화면은 완전히 검고 싱케이의 얼굴 또한 그만큼 검습니다. 우리는 단지 피부에서 번들거리는 빛만으로 그의 얼굴을 구별해낼 수 있는데, 이 장면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아주 극적이기도 하지요. 아미스타드 반란이 성공한 뒤, 싱케이가 키를 잡는 장면에서도 스필버그는 이런 방법을 다시 쓰고 있는데 (아시다시피 그는 한 번 쓴 시각적 묘사를 같은 영화 안에서 반복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역시 인상적입니다. 얼마나 독창적인지는 몰라도 (사진작가 티에리 르 고에의 최근 작품집 [Soul]에서도 비슷한 접근법을 본 적 있어요) 이런 작은 시도들이 카메라의 어휘를 확장시킬 것이라는 점은 인정해야 할 것 같군요. [아미스타드]에서 정말 중요한 요소는 내용보다 대상에 대한 시각적 접근 방법의 탐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나름대로 세상에 봉사하는 법이고 스필버그는 기질적으로 비주얼리스트니까요.

7.

[아미스타드]는 수많은 재능있는 배우들로 가득 찬 영화이지만 그들 중 가장 인상적인 배우는--예상하셨겠지만--싱케이를 연기한 지몬 훈수입니다. 그에게 안소니 홉킨즈의 능란한 연기 테크닉을 기대할 수는 없겠지만 그의 싱케이는 강하고 위엄이 있으며 그의 감정과 고통은 진짜 같습니다. 전적으로 믿을 만 합니다.

매튜 매커너헤이는 [콘택트] 때보다 낫습니다. 어깨 힘도 적당하게 뺐고 테크닉도 [타임 투 킬] 때보다 향상되었습니다. 모건 프리먼, 안소니 홉킨즈, 피트 포슬트웨이트, 나이젤 호돈같은 큰 이름들은 모두 자기 자리에서 자기 일을 잘 하지만 크게 튀지는 않습니다. 그들의 캐릭터들이 사람들로보다는 역사적 스케치로 다루어졌거든요.

8.

[아미스타드]는 성공적인 영화인가? 실패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영화는 강한 정서적인 힘을 가지고 있고 많은 부분은 강렬하고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미국 역사의 한가운데에 뛰어들 때, 영화는 종종 힘을 잃고 산만해지며 엉뚱한 곳에 지나치게 힘을 주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다룬 소재의 성격을 생각해보면 이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98/01/09)

★★★

기타등등

안나 파퀸이 스페인의 이자벨라 2세 여왕으로 나온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이 저희의 의무이겠지요. 하지만 단 세 장면밖에 없고 다 합쳐도 2분 정도밖에 안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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