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서 On Dangerous Ground (1952)

2010.02.19 00:36

DJUNA 조회 수:3191

감독: Nicholas Ray 출연: Robert Ryan, Ida Lupino, Ward Bond, Charles Kemper, Anthony Ross, Ed Begley, Ian Wolfe, Sumner Williams

제럴드 버틀러의 소설 [Mad with Much Heart]를 각색한 니콜라스 레이의 필름 느와르 [어둠 속에서]는 같은 주인공을 내세운 전혀 다른 성격의 두 영화를 하나로 묶은 듯한 작품입니다.

첫번째 도막은 대도시를 무대로 한 전형적인 도회지 형사 이야기입니다. 왕년에 미식축구 선수였지만 지금은 11년째 형사 노릇을 하고 있는 짐 윌슨은 당시 필름 느와르 남자 주인공들이 집단으로 앓던 인간혐오증과 비관주의에 감염되어 있습니다. 동료 형사를 죽인 범죄자들을 뒤쫓던 그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정보를 얻어내기 위해 가차없는 폭력을 휘두릅니다.

두번째 도막에서 윌슨의 상사는 골치거리인 윌슨을 북부의 시골로 파견합니다. 어린 소녀를 죽인 살인범을 분노한 아버지와 함께 뒤쫓던 그는 살인범의 누나인 맹인 여인 메리 몰든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아무리 분위기를 잡고 싶어도 밖에서는 복수를 맹세한 아버지가 미친 살인범의 머리를 사냥총으로 날려버리려고 벼르고 있었으니 그걸 지켜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죠.

두 이야기는 따로 떼어놓고 보면 모두 평범합니다. 첫번째 이야기는 정말 흔해빠진 필름 느와르죠. 전후 미국 사회의 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미국 남성들의 미숙한 정신이 폼잡는 비관주의와 폭력을 매개로 터져 나오는 겁니다. 미친 살인범과 장님 여인이 등장해 주인공과 얽히는 후반부의 작위적인 멜로드라마는 도입부의 사실주의도 갖추고 있지 못하죠.

그러나 이 둘이 연결되자 시너지 효과가 나타납니다. 스토리의 일관성과 구조의 통일성은 잃었지만 캐릭터의 성격과 내용이 훨씬 입체적이 된 것이죠.

정확히 동일한 인물인 짐 윌슨이 도시에서는 통제불가능한 '더티 해리' 취급을 받고 살인사건의 여파에 휘말린 시골에서는 지나치게 상식적이고 섬세한 인물 취급을 받는 건 그 중 흥미로운 사례입니다. 그건 윌슨이 성장하는 캐릭터여서이기도 하지만, 첫번째 이야기만으로는 다소 단순해질 수 있는 윌슨의 묘사에 깊이가 부여되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여기엔 배경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보이는 로버트 라이언의 다소 중립적인 연기도 한 몫 했겠지만요.

뻔한 형사물과 감상적인 멜로드라마의 연결도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따로 떼어놓고 보면 평범한 이야기들이 결합되자 정신적으로 붕괴되어가는 한 남자가 거의 종교적이기까지한 초현실적 경험으로 구원받는다는 이야기가 탄생한 겁니다. 이 역시 진부하다면 진부하다고 할 수 있지만 두 이야기의 전혀 다른 특성 때문에 최종 결과는 결코 뻔하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습니다.

글로 쓰면 다소 평면적으로 느껴지는 이야기는 니콜라스 레이에 의해 스크린에 옮겨지면 언어로는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시적인 차원을 부여받게 됩니다. 가장 기본적인 건 대도시의 삭막하고 건조한 분위기와 눈으로 덮이고 인간 세상으로부터 거의 고립되어 거의 초자연적인 배경처럼 느껴지는 자연의 대립입니다. 단순히 중간에 배경만 바뀐 것 같은데, 이 간단한 변화만으로 관객들은 갑자기 날개가 돋혀 날아오르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그 순간부터 윌슨의 정신적 여정은 당연한 어떤 것이 되지요.

[어둠 속에서]는 완벽한 영화는 아닙니다. 80분을 살짝 넘기는 러닝 타임은 윌슨의 개심을 다루기엔 너무 짧고 그의 심리묘사도 은근슬쩍 간략화된 느낌이 있습니다. 두 주인공들 모두에게 지나치게 관대한 결말은 타협처럼 느껴지고요. 하지만 이런 자잘한 단점을 잊고 보면, [어둠 속에서]는 여전히 쉽게 잊을 수 없는 강렬한 시청각적 경험으로 남습니다. 그것이 50년대 미국 남자들의 속보이는 낭만적 도피라고 해도 말이에요. (05/02/22)

★★★☆

기타등등

1. 1950년대 초반에 만들어진 RKO 영화이니, 하워드 휴즈가 보스였던 때입니다. 찰스 하이햄의 휴즈 전기를 읽고 나니 참으로 힘겹게 만들어진 영화라는 걸 알겠습니다.

2. 이 B급 영화에 A급의 분위기를 부여하는 건 버나드 허먼의 훌륭한 음악입니다. 들어보면 재미있습니다. 허먼이 히치콕의 전성기 걸작들을 위해 쓴 음악의 전조들이 조금씩 섞여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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