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콘신 데스 트립 Wisconsin Death Trip (1999)

2010.02.01 06:56

DJUNA 조회 수:4134

감독: James Marsh 출연: Ian Holm, Jo Vukelich, Jeffrey Golden, Marilyn White

[위스콘신 데스 트립]은 1970년대에 출판된 마이클 레시의 책을 옮긴 것입니다. 마이클 레시의 책은 1890년부터 1900년 사이에 위스콘신의 블랙 리버 폴즈라는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기록한 사진들과 신문기사들을 재편집한 커피 테이블 북으로, 발표 이후 상당한 컬트 팬들을 모았었습니다.

당시 블랙 리버 폴즈에서 무슨 일이 있었냐고요? 글쎄요. 처음에 이 마을은 미국 중서부의 다른 마을과 특별히 다를 게 없었습니다. 하지만 탄광이 폐쇄되고 은행이 파산하고 경제가 엉망이 되자, 슬슬 병적 징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지요. 아이들은 병으로 죽어가고, 사람들은 자살하거나 서로를 총으로 쏴 죽이고, 미쳐서 정신병원에 들어가고, 미신과 광신에 빠지고, 유령을 보고, 남의 집에 불을 지르고...

제임스 마쉬의 영화는 둘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우선 그는 레시의 책에 기록된 사건들 중 마음에 드는 것을 선정해서 드라마로 재현합니다. 이안 홈의 차분한 나레이션이 드뷔시나 포레의 조용한 음악과 함께 조용히 깔리는 동안 잔인무도한 광기과 폭력이 아름다운 흑백 화면 위로 터져나오는 것이죠.

그러는 동안 그는 블랙 리버 폴즈 마을의 현재 모습을 컬러 다큐멘터리로 담습니다. 고교 동창회, 미인 대회, 할로윈, 미식 축구... 우리가 미국의 작은 마을에서 기대할 수 있는 그 소박하고 작은 행사들을요. 그러나 그 평화로운 외피에도 불구하고 어두운 폭력의 그림자는 여전히 그 마을의 그늘 밑에 숨어있다가 가끔 나오는 뉴스를 통해 튀어나옵니다.

영화는 책과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요? 그런 것 같습니다. 둘다 괴기한 무표정함을 유지하고 있지만 어느 정도 차이점이 느껴지거든요. 특히 마쉬가 추가한 컬러 다큐멘터리 파트는요. 레비의 책이 당시 블랙 리버 폴즈에서 일어났던 일들의 병적인 특이성에 조금 더 쏠려 있다면, 마쉬는 그런 질병을 일으키는 보편적 요인에 조금 더 집중하는 것처럼 느껴져요. 영국인인 마쉬는 이 모든 일들을 미국적 질환으로 이해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열 세살 짜리 소년이 총으로 사람을 쏴 죽이고 희생자의 집에 눌러 사는 게 당연할 수 있었던 그 환경과 총기에 대한 미국인들의 집착은요.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마이클 무어의 [볼링 포 콜럼바인]과 연결되는 구석이 많아요.

그러나 [위스콘신 데스 트립]이 매력적인 영화라면, 이 작품이 분명한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은 아닐 겁니다. 오히려 그 메시지의 불명확성 때문이겠지요. 원작이 그렇듯, 마쉬의 영화는 불쾌한 종말론적 서정이라고 표현할만한 무언가를 품고 있습니다. 미친 오페라 가수와 유리창 깨트리기에 집착하는 전직 교사가 심심하면 단골 조연으로 등장하는 이 폭력적이고 이상한 이야기들은 마치 수정구슬처럼 우리 문명을 기다리고 있는 죽음과 광기로 가득 한 마지막 날들을 예언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04/03/22)

★★★☆

기타등등

블랙 리버 폴즈의 홈페이지에 가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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