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 파커 Ellie Parker (2005)

2010.02.01 06:47

DJUNA 조회 수:3860

감독: Scott Coffey 출연: Naomi Watts, Rebecca Riggs, Scott Coffey, Mark Pellegrino, Chevy Chase, Blair Mastbaum 

옛날 옛적 할리우드에 나오미 와츠라는 아름답고 매력적이고 재능이 폴폴 넘치는 배우가 살았습니다. 이 배우에겐 한 가지 큰 골치거리가 있었으니, 청운의 꿈을 안고 올라온 할리우드에서 이 사람의 미모와 매력과 재능을 알아보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는 거죠. 단짝 친구인 니콜 키드먼이 쟁쟁한 스타들과 함께 할리우드 대작들에 나오는 동안 [옥수수밭의 아이들 4]를 찍는 기분이 어떤지 상상해보세요. 연기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가자는 소리가 혀끝까지 올라오는 것도 당연합니다.

이 배우를 갑자기 띄워준 두 편의 영화가 모두 경력이 바닥을 기는 영화배우가 할리우드에게 보내는 씁쓸한 러브레터라는 점은 그래서 재미있습니다. 그 한 편은 여러분이 모두 아는 데이빗 린치의 영화 [멀홀랜드 드라이브]였고 다른 하나는 와츠가 동료 배우 스코트 코피와 함께 공동 제작과 주연을 맡은 디지털 단편 영화 [엘리 파커]였지요. 스코트 코피는 이 단편에 다른 장면들을 추가해 장편 영화로 만들었고 그 작품은 이번 선댄스에 출품되었습니다. 이렇게 오래 걸린 건 할리우드 대형스타가 된 와츠가 틈이 날 때까지 촬영이 여러 차례 중단되었기 때문이죠. 코피는 불평할 수도 없었을 거예요. 와츠가 스타가 되지 않았다면 투자자들을 얻지도 못했을 테니까.

영화의 주인공은... 당연히 엘리 파커라는 호주 출신 할리우드 배우입니다. 재능도 있는 것 같고 미인이기도 하지만 경력은 꽉 막혀 있죠. 관객들은 1시간 반의 러닝타임이 흐르는 동안 이 사람이 끊임없이 오디션을 보고 딱지를 맞고 바람피운 남자친구를 차고 다른 남자와 데이트를 하고 담배와 술과 마약에 빠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참 암담한 이야기에요. 엄격한 페이크 다큐멘터리는 아니지만 그래도 그 분위기를 흉내내는 영화의 스타일 때문에 더 그렇습니다. 파커에겐 장르적 구원 따위는 없을 것 같거든요.

[엘리 파커]가 그리는 할리우드는 배우 지망생이 꿈꿀 수 있는 최악의 악몽입니다. 슬프게도 가장 현실적인 악몽이기도 하죠. 대부분의 할리우드 배우 지망생들은 니콜 키드먼보다 엘리 파커가 될 가능성이 더 클 테니 말이에요. 이 영화는 할리우드 배우 지망생들에게 운전 강습 때 틀어주는 교통사고 현장 클립과 거의 동일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엘리 파커는 와츠의 자화상일까요? 파커도 와츠처럼 경력이 막힌 호주 출신 배우이긴 합니다. 분명 일부 에피소드엔 그 사람의 경험이 반영되었을 겁니다. 하지만 얄팍하고 자기중심적이고 생각없고 유치한 캐릭터의 전체적인 성격은 와츠 자신보다는 할리우드 배우 지망생의 막연한 캐리커처에 가깝습니다.

와츠가 그런 사람이 아닌지 어떻게 아느냐고요? 전 모르죠. 하지만 우리가 나오미 와츠라는 사람과 습관적으로 연결시키는 고정된 이미지와 파커 캐릭터 사이에 차이가 있는 건 분명합니다. 이게 재미있는 거죠. 와츠는 몸 사리지 않고 흥겹게 이 얄팍한 인물을 연기하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이 사람 특유의 우아함과 친절한 느낌이 조금씩 묻어나는 거예요. 이 영화가 짜증나는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인 것 같아요. 종종 와츠는 이 딱한 중생을 이해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친절한 관찰자처럼 보입니다.

영화 자체는 재미있을까요? 나오미 와츠의 팬들에겐 추천합니다. 연기를 잘 하기도 하지만 이 사람의 온갖 모습을 다 볼 수 있으니까요. 그게 꼭 아름답기만 한 건 아니지만 팬들은 개의치 않겠죠. 코피가 그리는 할리우드의 뒷모습이 꽤 설득력 있는 것도 사실이고 SNL의 팬들이라면 오래간만에 보는 체비 체이스의 모습이 반갑겠지요. 하지만 이것들을 즐기기 위해선 이 영화가 재미없고 흉악스러운 세상을 흉물스러운 DV 화면으로 담아낸 건조한 작품이라는 걸 먼저 받아들여야 합니다. (06/06/02)

★★★

기타등등

오리지널 단편 [엘리 파커]가 어떤 장면들을 담고 있었는지 모르겠군요. DVD 부록으로 담았어도 괜찮았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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