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츠 오페라, 닥? What's Opera, Doc? (1957)

2010.02.06 23:08

DJUNA 조회 수:4933

감독: Chuck Jones 출연: Mel Blanc, Arthur Q. Bryan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듀나 [왓츠 오페라, 닥?]은...

파프리카 워너 브라더즈 애니메이션 최대 걸작입니다.

듀나 그렇게 쉽게 말할 수는 없을 것 같군요. 물론 가장 훌륭한 워너 브라더즈 애니메이션들 중 하나이고 가장 유명한 벅스 버니 영화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왓츠 오페라, 닥?]에서 가장 중요한 건 질이 아니라 야심이지요.

[왓츠 오페라, 닥?]은 디즈니의 [판타지아]에 비길만한 거창한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반지]나 [탄호이저], [방황하는 네덜란드인]과 같은 바그너의 오페라들을 해체한 뒤 재조립해서 7분짜리 벅스 버니 오페라를 만드는 것이죠. 단지 될 수 있는 한 원곡의 모양을 유지하려고 하는 순수주의자인 [판타지아]와는 달리, 그들은 바그너를 아주 그럴싸한 워너 브라더즈식 농담으로 재구성하고 있습니다.

파프리카 하지만 정작 내용은 바그너와 큰 상관은 없지요? 엘머 퍼드가 지그프리트를, 벅스 버니가 브룬힐데를 연기하고 있지만, 이야기는 그들이 지금까지 계속 되풀이해왔던 모험담을 그냥 오페라로 옮긴 것입니다. 엘머 퍼드는 벅스 버니를 쫓고, 벅스 버니는 여자로 변장해서 그를 유혹하지요.

듀나 벅스 버니는 엘머 퍼드가 이미 알고 있는 브룬힐데로 변장한 걸까요, 아니면 엘머 퍼드가 여장한 벅스 버니를 그냥 브룬힐데라고 인정해버린 걸까요?

파프리카 후자가 아닐까요? 전자가 이치에 더 맞기는 하지만 후자라고 생각해요. 어차피 오페라는 양식화된 장르니까 이 정도는 비논리적이지도 않거든요. [왓츠 오페라, 닥?]은 불멸의 연인들이 자동적으로 지그프리트와 브룬힐데가 되는 세상입니다.

여기서 놀라운 점은 이 영화가 상당히 심각한 로맨스 영화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비극적인 로맨스지요. 엘머 퍼드/지그프리트는 운명의 여인 브룬힐데와 절대 사랑에 빠지지만 사실 '브룬힐데'는 그의 숙적이었으며 '남자'였어요. 배신감과 분노에 찬 그는 끝에 가서 벅스 버니/브룬힐데를 죽입니다. 네, 이 영화는 벅스 버니의 죽음으로 끝난답니다. 끝에 가서 벅스 버니가 살짝 눈을 뜨고 "Well, what did you expect in an opera? A happy ending?"이라는 유명한 대사를 던지긴 하지만요.

듀나 이 영화의 엘머는 정말 비극적인 주인공입니다. 그의 마지막 분노는 여전히 남아 있는 벅스 버니/브룬힐데에 대한 그의 사랑에 바탕을 두고 있지요. 벅스 버니가 죽자 그는 회한에 찬 오델로처럼 울부짖습니다. "What have I done?.... I've killed the wabbit... Poor wittle bunny..."

파프리카 [크라잉 게임]이 떠오르지 않나요? 이 영화는 가장과 모호한 성적 취향이 불러일으킨 비극적 로맨스입니다.

듀나 이런 심각한 분위기 때문에 영화의 코미디가 좀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파프리카 다른 벅스 버니 영화에서 찾아볼 수 있는 아기자기한 재미는 없지요. 하지만 늘 같은 농담만 할 수는 없지 않겠어요? 이 영화의 농담들은 모두 훌륭합니다. 일단 다양한 바그너의 음악들과 스토리들을 패러디한 음악과 가사 자체가 거창하고 멋진 농담인 걸요. 중반부에 이어지는 벅스 버니와 엘머 퍼드의 발레도 귀엽고요. 영화의 '비극적'인 내용도 바로 잘 활용된 그 비극성 때문에 더 입체적인 농담이 됩니다. 다른 벅스 버니 영화들처럼 자극적은 아니지만 뒷맛은 더 오래 남습니다.

듀나 이 영화를 볼 때마다 놀라는 건 브룬힐데로 변장한 벅스 버니가 징그러울 정도로 예쁘다는 것입니다. 아마 벅스 버니처럼 예쁜 브룬힐데는 지금까지 없었을 걸요. 벅스 버니가 엘머 퍼드를 유혹하며 그 긴 속눈썹을 나비 날개 팔락이듯 깜짝이는 걸 보면... 와...

파프리카 네, 정말 섹시해요. 어쩜 그럴 수가 있지요?

듀나 아마 벅스 버니가 꾸며낸 섹시한 이미지가 철저한 허상이기 때문에 더 섹시하게 느껴지는 건지도 모르죠. 영화를 보면 볼수록 엘머 퍼드의 매혹과 좌절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답니다.

파프리카 전 아직도 [왓츠 오페라 닥?]은 가장 훌륭한 워너 브라더즈 애니메이션이라고 주장합니다. 이 영화에서는 거창한 스케일과 작은 그릇, 진지한 로맨스와 우스꽝스러운 소극, 공격적인 패러디와 원작에 대한 애정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바그너 오페라의 클리셰를 패러디한 세트는 우스운 만큼 아름답고 멜 블랭크와 아서 Q. 브라이언의 목소리 연기도 이상적입니다. 이 7분짜리 소품처럼 완벽한 성과를 거둔 뮤지컬 영화는 많지 않아요. (03/05/26)

★★★★

기타등등

이 영화의 감독인 척 존스와 각본가인 마이클 몰티즈는 이전에도 [세빌리아의 토끼]라는 오페라 영화를 만든 적 있습니다. 이 작품은 나중에 다루기로 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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