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티 E.T. the Extra-Terrestrial (1982)

2010.02.13 17:33

DJUNA 조회 수:5730

감독: Steven Spielberg 출연: Henry Thomas, Drew Barrymore, Robert MacNaughton, Dee Wallace, Peter Coyote, K.C. Martel, Sean Frye, C. Thomas Howell, Erika Eleniak

1.

로저 이버트의 손자 에밀은 할아버지와 함께 [E.T.]를 보다가 마지막 우주선 장면에서 E.T.를 맞아주는 외계인을 보고 이렇게 외쳤습니다. "저건 E.T.의 엄마야!"

저 역시 비슷한 나이 또래의 아이들과 그 영화를 보다가 거의 똑같은 반응을 목격한 적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아이들이 세상을 보는 관점은 대부분 비슷한 모양입니다. 아이들은 E.T.를 길잃은 아이로 봅니다. 아무리 각본에서 500살 먹은 식물학자로 설정했다고 주장해도 말이에요. 그런 아이가 우주선에서 엄마를 만나는 건 아주 당연한 일이죠.

많은 스필버그 영화에는 열살박이 소년의 환상과도 같은 순진무구한 분위기가 녹아 있습니다. 하지만 [E.T.]는 그 이상의 것입니다. 이 영화는 정말로 어린이 영화입니다.

비슷한 소재를 다룬 [미지와의 조우]와 비교해보면 그 사실을 보다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미지와의 조우]에도 소년다운 열정이 넘쳐 흐르지만 전체적으로 소재와 스토리는 어른의 것입니다. 로이 니어리는 소년 같은 영웅인지 몰라도 소년은 아닙니다. 그의 소년다운 행동이 감동을 주는 것도 결국 그가 어른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E.T.]에서 그런 어른들의 가치들은 더이상 중요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들은 아이들의 기준으로 축소됩니다. 이 영화에서 진짜로 중요한 것은 E.T.가 길잃은 아이라는 것, 그리고 그가 아이들의 멋진 친구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맞추기 위해 영화는 논리나 타당성 따위는 가볍게 무시합니다. E.T.의 정체에 대해 논리적으로 따지기 시작하면 이상한 게 한 둘이 아니죠. 도대체 이 외계인의 아이큐와 초능력은 어느 정도일까요? 왜 어떤 때는 강아지 수준의 지능밖에 없는 것처럼 굴다가 갑자기 천재 맥가이버가 되는 걸까요? 왜 자전거를 탄 다섯 아이들을 가볍게 날려 버릴 수 있으면서도 정작 자기는 날지 못하는 걸까요? 정답은 간단합니다. 논리를 따지기 시작하면 결코 아이들의 소망에 맞춘 외계인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죠.

멜리사 매디슨의 각본에는 아주 훌륭한 동화들만이 가지고 있는 강한 힘이 있습니다. 완벽한 소망 충족을 가져오는 환상과 그와 대립되는 차갑고 건조한 현실의 대조도 그런 예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도 매디슨이 아이들이 무엇을 바라고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건조한 작가였다면 결코 지금의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을 겁니다.

스필버그는 영화 전체를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고 (이 표현은 꼭 비유만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장면에서 정말로 카메라를 아이들 눈 높이에 올려 놓고 찍었거든요) 이들에게 완벽하게 감정 이입을 끌어내는 데 성공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가 종종 어른들을 부당하게 소외시키고 있다는 비판을 듣는 것도 그 때문이지요. 애당초부터 어른들은 이 이야기에 맞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들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인 걸요. 메리나 키스 같은 사람들이 그 정도만큼 개입될 수 있었던 것도 오히려 다행일 정도예요.

그는 아이들한테서 훌륭한 연기를 끄집어내는 방법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시간 순서대로 영화를 찍으면서 그들의 감정을 조절했고 적당한 즉흥 연기를 허용하면서 그들의 자연스러운 연기를 끌어냈습니다. 물론 헨리 토머스와 드루 배리모어와 같은 배우들이 원래부터 타고난 연기자들이 아니었다면 아무리 애를 써도 소용없는 일이었겠지만요.

그는 특수 효과를 적절하게 삽입하는 방법도 알고 있었습니다. 소문과는 달리, 스필버그는 결코 적극적인 특수 효과의 개척자는 아닙니다. 오히려 그는 기존 특수 효과를 적절하게 삽입하는 데에 더 신경을 쓰는 편이죠. [E.T.]에서도 그런 그의 특성이 드러납니다. 이 영화의 애니매트로닉스 기술은 선구적이었지만 스필버그는 다양한 테크닉을 과시하는 대신 이들을 이용해 아이들의 감정이 듬뿍 담긴 환상을 창조하는 쪽에 더 신경을 썼습니다. 많은 마술적인 장면들이 아주 최소한의 특수 효과만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봐도 알 수 있어요. 엘리엇과 E.T.의 첫만남과 같은 걸 보세요. 새알 초콜렛과 야구공만으로 대부분을 해치웠지요.

[E.T.]는 십 여년 동안이나 깨지지 않았던 어마어마한 흥행 성적 때문에 오히려 잘못 평가되는 경우가 많은 영화입니다. 20주년 기념 재개봉은 이 영화의 소박한 아름다움을 다시 인식하게 해줄 수 있는 계기가 될지도 모르죠.

2.

곧 [E.T.]의 20주년 기념 특별판이 개봉됩니다. 몇 년 전에 개봉된 [스타 워즈] 3부작처럼 이 작품도 약간 손을 본 개정판입니다.

가장 큰 차이점은 추가된 몇몇 장면입니다. 엘리엇과 E.T.의 욕실 장면은 이전의 애니매트로닉스 기술로는 불가능했던 걸 현대의 컴퓨터 그래픽으로 되살린 것인데, E.T.의 몇몇 동작이 다른 장면보다 더 자유스럽긴 해도 특별히 튀지는 않습니다. 할로윈 밤 장면처럼 특수 효과가 없는 장면이면서도 새로 추가된 부분도 있는데,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장면이지만 그래도 있는 편이 좋은 것 같습니다. 그 장면에 나오는 드루 배리모어가 너무 너무 귀엽거든요.

분명히 눈에 뜨이지는 않지만 기존의 장면들도 특수 효과를 많이 다듬었습니다. 전체적으로 E.T.의 표정과 동작이 약간씩 더 자연스러워졌어요. 아주 신경 쓰이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스타워즈] 특별판들과는 달리 특수 효과 수정이 작품 전체를 통해 이루어졌고 그 특수 효과라는 것이 그렇게 과시적이 아니기 때문일 거예요.

정부요원들의 손에 들린 총을 무전기로 교체시킨 변형에 대해서 말이 많은데, 역시 너무 신경 쓸 필요는 없습니다. 미리 알고 있으니까 신경이 쓰이지, 그냥 보면 쉽게 지나칠 정도니까요. 대단한 내용의 변형도 없고요. 총이 싫다면 지우라죠.

그래도 '테러리스트'라는 대사를 '히피'로 고친 건 좀 유난스럽게 느껴집니다. 참, 잘릴 거라던 penis breath 대사는 그냥 달려 있던 걸요. (02/03/21)

★★★★

기타등등

벌써 20주년이라니 조금 끔찍합니다. 이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했고 한동안 일급 배우로 상승하는 듯 싶었다가 다시 B급 배우로 추락한 C. 토머스 하웰의 모습을 보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들고요.

그래도 당시만 해도 첨단이었던 이 영화에서 80년대의 추억을 발견하시는 분들도 많을 겁니다. [스타 워즈] 시리즈, 에스터로이드 게임, 스페이스 인베이더 화면이 새겨진 티셔츠와 같은 것들은 분명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구석이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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