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 최대의 작전 The Longest Day (1962)

2010.02.13 18:39

DJUNA 조회 수:5584

감독: Ken Annakin, Andrew Marton & Bernhard Wicki 출연: Arletty, Richard Beymer, Richard Burton, Sean Connery, Mel Ferrer, Henry Fonda, Curt Jürgens, John Wayne

1.

금요일 밤의 안락한 독서에 코넬리어스 라이언의 2차 세계대전 삼부작 만큼 좋은 책들이 있을까요? 따뜻한 방에 편안히 앉아 2차 세계대전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사건에 뛰어드는 것만큼 흥분되면서도 안심되는 경험은 많지 않을 겁니다. 독자들이 책장을 넘기는 동안, 라이언은 히틀러의 침실에서부터 연합군의 시체가 널린 오마하 비치까지 종횡무진 누비면서 그들을 피튀기는 전쟁의 현장으로 데려갑니다. 이 삼부작의 현장감은 놀랄 만 한데, 라이언이라는 작가가 탁상 역사가가 아닌, 노르망디와 독일 전선의 현장에 있었던 저널리스트였라는 점을 생각하면 오히려 당연하다고 하겠습니다.

한참 제작자로서의 자신의 직업에 위기를 느끼고 있던 대릴 자눅이 라이언의 책을 발견하고 영화화를 계획한 것은 분명 모험이었지만, 라이언의 [가장 긴 날]이라는 책이 지닌 매력을 생각해보면 꽤 승산있는 모험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릴 자눅은 마침내 3명의 감독(공식적으로만 세 명입니다)과 수십 명의 다국적 스타들을 끌어 모아 이 괴물같은 세미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냈고 이 작품은 곧 한 시대를 풍미한, 전쟁 세미 다큐멘터리라는 장르를 탄생시켰습니다. 이 장르의 약발도 언제나 듣지는 않아, [머나먼 다리(역시 코넬리어스 라이언의 책을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 같은 영화로 가면 정말 시시해지지만, 적어도 이 영화 [가장 긴 날(국내 출시 제목은 [지상 최대의 작전])은 초창기의 화끈한 힘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2.

[지상 최대의 작전]은 '큰' 영화입니다. 존 웨인, 로버트 미첨, 헨리 폰다, 쿠르트 유르겐스, 리처드 버튼, 숀 코너리, 장 루이 바로와 같은 배우들은 이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 중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나오다 보니 몇몇 유명한 배우들은 눈 앞에서 그냥 지나갑니다. 저희 경우에도 로드 스타이거가 어디에서 나왔다가 어디로 갔는지 아직도 모릅니다.

물론 이 배우들은 케익 장식과 같은 역할 이상은 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건 자체니까요. 이 거대한 괴물의 유일한 목적은 노르망디 상륙 작전의 처음 몇 시간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 이상이 아니었습니다.

그 결과, 당시 상업 영화의 몇몇 기준들은 그냥 넘어갑니다. 예를 들어 이 영화는 언어의 리얼리티를 그대로 살리는 몇 안되는 헐리웃 영화 중 하나인데 (다시 말해 독일인은 독일어로 말하고 프랑스인은 프랑스어로 말한단 말이죠. :-)) 이런 전통은 그 뒤에 잔뜩 나온 다국적 2차 세계대전 영화들에서도 그대로 지켜집니다.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스타 배우들도 늘 자기에게 배정된 작은 자리에서 만족하고 있습니다. 리처드 버튼은 적진에 떨어진 뒤 빌빌댈 뿐이고, 존 웨인은 다리가 부러진 채 끌려다니기만 하며, 헨리 폰다는 두 번인가 나오고 끝입니다.

그러나 영화는, 편협한 헐리웃 영화 관객들이 보기에도 흥미진진합니다. 라이언의 원작이 가진 그 거대한 매력이 상당히 많이 남아있고 거기에다 대규모의 스펙타클까지 덤으로 얹어 놓았으니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이점까지 얻은 셈이니까요. 원작이 그랬던 것처럼 영화는 그 무시무시한 하루 동안 유럽 전역을 누비면서 장려한 이야기를 쌓아올립니다. 비록 책을 읽을 때만큼 차분하게 즐길 수는 없겠지만 영화는 나름대로 새로 첨가된 매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3.

이 영화를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비교하려는 욕구는 [타이타닉]과 [타이타닉 호의 비극 A Night to Remember]를 비교하려는 욕구만큼이나 자연스럽습니다. 생각해보니 이 두 쌍에는 같은 점이 많습니다. 옛 영화들이 세미 다큐멘터리의 위치에 가만히 머물러 있는 동안, 새 영화들이 가공의 인물들을 끌어들여 비교적 개인적인 사건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 그중 가장 중요한 차이점이자 공통점이겠지요.

[타이타닉]과 [A Night to Remember] 이야기는 예전에 이미 했으니까 그냥 넘어가고, 여기서는 [지상 최대의 작전]에서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비교할 수 있는 부분들을 뽑아보기로 하죠. 일단 이 두 작품이 겹치는 부분은 오마하 비치 상륙과 점령 지역에 낙하된 82사단과 101사단의 행적입니다. 오마하 비치 장면의 피터지는 묘사는 분명 스필버그의 새 영화가 [지상 최대의 작전]을 능가합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보고 난 뒤 이 영화를 다시 보니, 전에는 그처럼 긴박해보였던 장면들이 참으로 안전해보이더라니까요. 하지만 오마하 비치에서 무슨 일들이 어떻게 일어났는가를 알고 싶다면 [지상 최대의 작전]을 보는 편이 정보를 얻는 데에 유리할 수도 있습니다. 라이언이 소속되어 있던 101사단의 이야기도 [지상 최대의 작전]이 훨씬 많은 정보를 주고 있지요. 그리고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는 거의 볼 수 없었던 독일측 반응에 대한 상당히 자세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죠.

다시 말해, 이 두 영화는 상호보완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필버그는 '보여주고' 코넬리어스 라이언 (그리고 대릴 자눅, 앤드류 마튼, 베른하르트 비키, 켄 아나킨)은 '이야기합니다.' 만약 이 영화들을 둘 다 보실 생각이라면 [지상 최대의 작전]을 보신 다음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보세요. 이해가 훨씬 빠를 겁니다. (98/09/18)

★★★☆

기타등등

이 영화는 흑백 시네마스코프지만 출시된 비디오는 텔레비전 화면에 맞추어 편집되었고 컴퓨터 컬러 버젼입니다. 저희는 색농도를 낮추어 흑백으로 보았으니 색깔에는 신경쓰지 않아도 되었지만 그래도 크로핑한 화면은 원래 영화의 장려함을 많이 지워버리더군요. 하긴 한 동안은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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