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의 유령 The Phantom of the Opera (1925)

2010.02.06 20:23

DJUNA 조회 수:3821

감독: Rupert Julian 출연: Lon Chaney, Mary Philbin, Norman Kerry, Arthur Edmund Carewe, Gibson Gowland, John St. Polis, Snitz Edwards, Mary Fabian

[오페라의 유령]은 아마 가장 유명한 무성 호러 영화 중 하나일 것입니다. 이 영화의 명성에 견줄만한 작품은 무르나우의 [노스페라투] 정도겠죠. 이 영화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이더라도 메리 필빈이 론 채니의 마스크를 벗기는 유명한 장면은 알고 있습니다.

이 영화의 원작은 [노란 방의 비밀]로 유명한 추리작가 가스통 르루의 동명 소설입니다. 평은 지금도 그렇게 좋지 않지만 국제적인 대중적 인기는 [노란 방의 비밀]을 능가하죠. 결코 완벽한 작품도 아니고 깊이 있는 작품도 아니지만,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그로테스크한 매력과 화끈한 멜로드라마 그리고 우리의 집단적 무의식을 자극하는 미녀와 야수의 고전적 테마 때문에 쉽게 잊혀지는 작품은 아닙니다.

당연히 할리우드의 제작자들이 관심을 가질만도 하겠죠? 그리고 이 영화 [오페라의 유령]은 이 작품을 원작으로 한 첫번째 영화입니다. 고생이 참 많았던 영화라죠. 끊임없는 재촬영에, 수없이 바뀐 감독들에, 점점 뒤로 밀려나간 개봉 일자에... 영화가 개봉된 뒤에도 작품은 그대로 남아 있지 못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작품은 29년에 만든 재편집본이라고 하니까요. 작가주의 평론가들은 심심할 겁니다. 이 영화에서 어떤 영웅적인 창작자의 개성을 발견할 수는 없을테니까요. 이 영화를 고전으로 만든 것은 '작가'의 통제력이 아닙니다. [카사블랑카]처럼 시스템 속에서 어쩌다 만들어진 것이죠.

[오페라의 유령]은 여전히 막강한 힘을 유지하며 영화사에서 자기 자리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아마 일등 공신은 유령을 연기한 론 채니겠지요. 특히 그의 분장은 엄청납니다. 론 채니는 훌륭한 무성 영화 배우이기도 하지만, 그의 진짜 가치는 그의 분장 실력에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의 창의력이 가장 훌륭하게 발휘된 부분도 분장이었고요. 아마 그가 지금 태어났다면 배우가 되는 대신 특수 분장 전문가가 되었을 겁니다.

하여간 그의 유령은 멋진 괴물입니다. 결코 간단한 캐릭터도 아니지요. 반쯤은 혐오스러운 괴물이고 반쯤은 동정받아 마땅한 이 헛갈리는 인물은 끊임없이 관객들의 동정과 혐오, 증오와 연민 사이를 오가면서 근사한 쇼를 연출합니다. 론 채니의 무시무시한 분장이 이런 복잡 미묘함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영화를 보다보면 그런 생각은 별로 들지 않습니다.

영화는 그러면서도 결코 얕은 감상에 빠지지도 않습니다. 심지어 결말은 감상적인 원작보다 훨씬 매정하죠. 후반부의 린치 장면은 아마 [프랑켄슈타인]에 영향을 주었을 겁니다. 최선의 결말이었는지는 몰라도 아주 인상적인 해결인 것은 분명하죠.

이 낡은 영화에서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뮤지컬이 가진 화려함이나 현대 호러물의 잔혹함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겁니다. 무성 영화 시대 배우들의 양식화된 연기가 요새 관객들의 감상을 방해할 수도 있고요. 하지만 그것들은 비교적 지엽적인 것들입니다. 누구 말마따나 영화의 심장은 여전히 뛰고 있으니까요. (00/04/24)

★★★☆

기타등등

론 채니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유령을 연기했습니다. 가장 유명한 사람은 클로드 레인즈겠죠. 가장 최근에 로버트 잉글런드가 했었고요. 그 사이에 허버트 롬, 막시밀리언 셸과 같은 배우들이 있었습니다. 론 채니의 명성을 능가할만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은 없었지만 그게 꼭 후대 배우의 역량 부족 탓은 아니었을 겁니다. 전설이란 깨기가 힘든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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