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즐리 맨 Grizzly Man (2005)

2010.01.26 10:03

DJUNA 조회 수:6201


티모시 트레드웰은 곰들을 사랑했습니다. 그는 13년 동안 여름마다 알래스카의 국립공원을 방문해 곰들과 함께 살았고 마지막 5년은 DV 카메라로 그들의 모습을 찍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곰들에 대한 지식을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그들을 보호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그는 유명해졌고, 동료인 주얼 팔로박과 함께 그의 경험을 담은 책을 썼고, 데이빗 레터맨 쇼의 게스트로 출연하기도 했지요.


2003년, 그는 곰에게 잡아 먹혔습니다. 2년 동안 그와 함께 여름을 보냈던 그의 여자친구 에이미 휴그나드와 함께요. 당시 그의 뚜껑닫힌 카메라는 작동 중이었고 그들의 마지막 비명을 담았습니다.


예술이 인생을 모방하는 게 정상이지만 때로는 인생이 예술을 모방하기도 합니다. 베르너 헤어초크의 [그리즐리 맨]은 후자입니다. 티모시 트레드웰의 삶은 "제발 베르너 헤어초크가 내 인생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줘!"라고 외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헤어초크 자신도 티모시 트레드웰의 삶을 점검하다 종종 데자뷔에 빠집니다. 흠, 이런 경우를 전에 어디서 봤는데? 혹시 내 영화에서였나? 혹시 클라우스 킨스키와 정글에서 싸우던 때였나?


트레드웰은 전형적인 헤어초크식 주인공입니다. 그는 이상주의자이고 열정적이고 괴팍하고 살짝 미쳤습니다. 아마 조금 모자라는 사람인지도 모르죠. 솔직히 전 그가 카메라로 곰들을 찍기 전에 무얼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곰들을 보호하고 싶다고 했지만, 그는 전문가들과 관리들이 관리하는 안전한 국립공원 안에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연구할 거리가 있는 학자도 아니었고요. 할 일이 없었어요. 그가 한 일은 오히려 곰들에게 해가 되는 일일 수도 있었습니다. 영화 중간에 에스키모 학자가 말한 것처럼 사람들은 곰의 영역을 존중하고 거기에 가까이 가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도 그는 끊임없이 곰의 세계에 들어가 그들의 친구가 되고 싶어했습니다.


아마 그는 그냥 곰이 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트레드웰과 인간세계는 그렇게 사이가 좋지 못했습니다. 여자관계는 안 좋았고, 돈도 못 벌었고, 알코올 중독자였고, 배우로서 경력도 시시했습니다. 그런 구질구질한 인생을 어느 정도 바꾸어 준 건 곰들이었습니다. 그가 곰으로 대표되는 자연을 사랑하고 그를 미화하고 그 일부가 되길 바랐던 것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영화 내내 티모시 트레드웰과 베르너 헤어초크는 충돌합니다. 트레드웰은 자신이 혼자 문명세계로부터 곰들을 보호하는 영웅처럼 보이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헤어초크는 그 행동의 무익함과 어리석음, 자기 기만을 지적하는 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죠. 트레드웰은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그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보여주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헤어초크는 자연 속에서 트레드웰이 보았던 신비스러운 조화 대신 무덤덤하고 가차없는 잔인함만을 봅니다. 심지어 그는 트레드웰과 곰들의 유대관계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하긴 결말을 보세요. 인정하게 생겼어요?


그러나 이 영화에 충돌만이 존재하는 건 아닙니다. 일단 처음부터 그런 충돌이 존재하는 이유는 헤어초크 자신이 그런 캐릭터에 매료되어 있기 때문이잖아요. 트레드웰은 어리석은만큼이나 매력적이고 종종 아름답기까지 한 인물입니다. 종종 헤어초크는 그를 동료 영화인으로서 받아들이고 전문가로서 그를 예찬하기도 합니다. 그럴만도 해요. 트레드웰이 5년 동안 찍은 영상 자료들은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우며 디스커버리 채널 다큐멘터리 따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시적인 느낌까지 담고 있습니다. 여기에 편집되지 않은 그의 사적인 독백까지 들어가기 시작하면 이 클립들은 엄청나게 재미있어져요. [그리즐리 맨]은 헤어초크의 영화지만 그만큼이나 트레드웰의 영화이기도 합니다. 헤어초크가 주제를 정하고 영화를 끌어가고 있긴 하지만 트레드웰이 한 명의 예술가로서 제공한 소스의 가치 또한 무시할 수 없는 겁니다.


영화를 보고 나니 어떤 생각이 들었냐고요? 전 기본적으로 트레드웰이 어리석은 남자이고 자신과 여자친구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어리석음은 얼마나 인간적인가요. 우리도 그처럼 그가 결코 될 수 없는 대상에 빠지고 결코 사실일 수 없는 환영에 사로잡혀 있지 않나요? (06/07/19)


★★★★


기타등등

그리즐리 맨의 DVD판에는 레터맨 클립이 삭제되고 NBC 뉴스 클립이 대신 들어간 모양이더군요.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감독의 의도인지, 저작권 문제인지... 


감독: Werner Herzog


IMDb http://www.imdb.com/title/tt0427312/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4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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