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 Zoo (2007)

2010.02.19 23:54

DJUNA 조회 수:6607

 

2005년, 보잉 회사의 중역인 케네스 피니언이라는 남자가 워싱턴 주 이넘클라우 병원에 실려왔습니다. 그는 병원에 도착한지 얼마 되지 않아 숨졌는데요, 결장에 커다란 구멍이 뻥 뚫려있었답니다. 알고 봤더니 피니언과 그의 친구들은 말과 성행위를 하는 취미 동아리에 소속되어 있었고 그 사고도 피니언이 수말과 섹스를 하는 동안 일어났다는군요. 사람이 하나 죽긴 했지만 이 사고로 기소되거나 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당시 워싱턴 주에서는 수간이 범죄가 아니었다고 하니까요. 하긴 그 사건으로 누군가가 기소되어도 괴상할 겁니다. 그 뒤로 법이 바뀌어서 지금 워싱턴 주에서 동물과 섹스를 하면 10년 이하 징역이라는군요.

 

[폴리스 비트]의 로빈슨 디버가 감독한 [동물원]은 바로 피니언(영화에서는 미스터 핸드라는 별명으로만 불립니다)과 그의 친구들의 이야기입니다. 어쩌다가 이런 취미 생활에 말려들었는지, 이런 짓을 하면서 양심의 가책은 없는지, 그들과 섹스하는 동물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동물성애에 대해 대단한 정보를 얻기 위해 이 영화를 보신 분들은 실망하셨을 수도 있겠어요. 그렇게 새로운 정보는 없거든요. 하긴 섹스라는 것은 대부분 비슷하죠. 대상이 다를 뿐이지.

 

디버는 이들을 도덕적 잣대로 평가할 생각도 없고, 이들의 음란함을 강조해서 센세이셔널한 섹스 다큐멘터리를 만들 생각도 없습니다. 그는 그냥 나서지 않고 이들의 이야기를 조용히 들어줘요. 그리고 그들의 인터뷰 자료를 바탕으로 당시 일어났던 일들을 재구성하는데, 그 때문에 영화는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어중간한 경계선에 들어가게 됩니다.

 

[동물원]에서 가장 괴상한 점은 이 작품이 상당히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사회가 금지한 비밀스러운 열정에 조용히 몸을 던지는 이 남자들의 이야기에는 후기로맨티시즘의 장중함이 느껴집니다. 구스타프 홀스트의 [행성]과 폴 매튜 무어의 오리지널 음악도 에롤 모리스를 연상시키는 영화의 담담한 스타일에 봉사하고요. 디버는 마치 실제로 일어난 사건의 코믹한 민망함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시치미를 뚝 떼고 이 황당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이 영화의 진짜 매력도 바로 주제와 스타일의 어긋남에서 나오고요.

 

이 영화를 보고나서 동물성애에 대한 관객들의 입장이 바뀔 것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저는 어떠냐고요? 전 여기에 대해 제가 어떤 입장인지도 모르겠어요. 남의 침실 문제에 대해서는 신경을 끄자는 게 제 원칙이지만 그래도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동물로부터 어떻게 '동의'를 얻느냐는 문제가 있잖아요. 하긴 피니언의 경우--영화 속의 모 코미디언도 말했듯이-- '가해자'인 수말의 '동의'가 없었다고 주장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괴상하긴 합니다. (07/09/10)

 

★★★

 

기타등등

근데, 전 피니언의 성적취향보다는 아들이 어떻게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일지가 더 신경쓰이더군요. "얘야, 지금까지 비밀로 하고 있었지만, 너네 아빠는 말과 섹스하다 결장이 터져 죽었단다!" 걔 엄마가 아닌 게 얼마나 다행인지. 

 

감독: Robinson Devor 출연: Coyote, John Paulsen, Conor Gormally, Malayka Gorma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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