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부인: 세기의 스캔들 The Duchess (2008)

2010.01.27 11:39

DJUNA 조회 수:7986


[공작부인: 세기의 스캔들]은 데븐셔 공작부인 조지아나 캐번디시의 전기물입니다. 원작은 위트브레드 상을 받은 아만다 포어맨의 전기고요. 재미있는 사람이에요. 죠슈아 레이놀즈와 토머스 게인즈보로의 모델이 되었던 미인이었고, 당대의 패션 리더였으며, 영향력 높은 사교계 인사였고, 여성참정권이 허용되기 훨씬 전인 18세기 말에 정치운동에 뛰어들어 휘그 당을 승리로 이끌었지요. 종종 이 사람의 먼 친척뻘 쯤 되는 다이애나 왕세자비와 비교되기도 하는데, 아무래도 다이애나쪽이 여러 모로 밀립니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조지아나 캐번디시의 결혼생활과 불륜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내용만 보면 딱 요새 타블로이드 신문 기사나 다이애나 왕세자비를 주인공으로 한 수많은 텔레비전 영화의 내용과 거의 같죠. 단지 키라 나이틀리와 레이프 파인즈와 같은 일급 배우들이 주연을 한 18세기 사극이어서 오스카 용 고급영화 대접을 받는 것입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조지아나 스펜서는 한참 연상인 데븐셔 공작과 결혼했는데, 남편은 후계자인 아들을 낳지 못하는 아내를 외면하고 바람을 피웁니다. 그리고 그 결정타는 조지아나의 유일한 친구인 베스 포스터를 정부로 만든 것이죠. 조지아나는 남편과 베스의 관계를 인정하지만 자신도 휘그 당의 젊은 정치가인 찰스 그레이와 바람을 피워 사생아까지 낳습니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나름 정당한 게임처럼 보이지만 영화의 관점은 다릅니다. 남편이라는 위치와 영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귀족이라는 권력을 멋대로 휘둘러대는 데븐셔 공작과는 달리 조지아나에겐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습니다. 아무리 자유를 갈구해도 결국 남편이 쌓아놓은 장벽에 갇혀 버리죠.


영화는 자연스럽게 가부장제도에 대한 냉소적인 야유로 이어집니다. 아무리 조지아나가 매력적인 사람이고, 영국 사교계에서 스타이고, 남편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고 해도, 남자들의 혈통 유지에 의해 지탱되는 계급 사회에서는 약자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보면 많이 암담합니다.


영화는 냉정하고 건조합니다. 장르 역사물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차가운 현대의 관점으로 과거 사람들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죠. 그들은 자연스럽게 과거의 사건을 현대와 연결시키기도 합니다. 조지아나 캐번디시의 삶은 파파라치와 타블로이드, 유명인사들에 둘러 싸여 지냈던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삶과 거의 비슷하게 그려집니다. 어느 쪽을 선택하건 미화는 없습니다. 이들에게 조지아나 캐번디시의 삶은 번지르르한 지옥입니다.


보기 좋고 능숙한 영화입니다. 감독 솔 딥이 아무리 이런 역사물에 초보라고 해도 노련한 전문가들에게 둘러싸여 있어서 큰 실수 같은 건 일어나기 힘들지요. 키라 나이틀리, 레이프 파인즈, 샬롯 램플링이 보여주는 노련하고 불꽃같은 연기 역시 칭찬받을만 합니다. 특히 사악한 남편 데븐셔 공작을 연기한 레이프 파인즈는 근사합니다. 영화 속의 레이프 파인즈를 이처럼 싫어했던 적도 없었어요! (08/10/07)


★★★


기타등등

전 조지아나 캐번디시가 이 영화에 그려진 것보다는 다채로운 삶을 살았다고 믿습니다. 아만다 포어맨의 전기도 이보다는 더 많은 이야기를 다루었겠죠.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