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클레이튼 Michael Clayton (2007)

2010.01.27 11:40

DJUNA 조회 수:5290


[마이클 클레이튼]의 감독/각본가인 토니 길로이가 [본] 시리즈의 각색을 맡았다는 걸 아는 관객들은 [마이클 클레이튼]도 같은 틀을 통해 보게 됩니다. 모두 부패한 조직에 속해있는 유능한 전문가가 시스템에 반기를 든다는 내용이거든요. 단지 [본] 시리즈가 그 이후에 집중하고 있다면 [마이클 클레이튼]은 그 이전을 다루고 있다고 할 수 있죠.


타이틀 롤인 마이클 클레이튼은 변호사입니다. 한동안 검사로 일했다가 뉴욕의 커다란 로펌에 취직해서 일해오고 있죠. 겉으로 보면 그는 자수성가한 남자입니다. 퀸즈의 노동자 계급에서 자라 뉴욕의 일급 변호사가 되어 메르세데스 벤츠를 몰고 다니죠. 하지만 그의 속은 텅 비어있습니다. 아마도 이혼한 것 같고 한동안 도박에 빠졌고 전재산은 레스토랑을 차리려다 말아먹었고 몰고다니는 자동차도 회사에서 대여한 것이죠. 그의 직업도 그리 자랑할만한 게 아닙니다. 그는 청소부입니다. 음지에서 보이지 않게 조용히 일하며 남의 문제들을 해결해주는 게 전문이죠. 그는 그 일을 아주 잘 하지만 그 직업의 가치에 대해 설명하기는 쉽지 않죠. 소문대로 다니던 회사가 런던의 로펌과 합병이라도 한다면 그의 위치가 어떻게 되겠어요.


이러던 그에게 사건이 떨어집니다. 몇 년 동안 U/노스라는 다국적 제초제 회사와 연결된 소송을 담당하던 동료 변호사 아서 이든스가 갑자기 맛이 간 것이죠. 원고측 앞에서 스트립쇼를 하며 사랑한다고 고함을 질러댄 건 그가 멋대로 약을 끊은 조울증 환자이기 때문이라고 이해하겠는데, 회사에 불리한 정보를 빼돌리고 원고측을 돕겠다고 나선 건 결코 용납할 수 없는 거죠. 수억의 돈이 그 정신나간 변호사의 손에 달려있는 걸요. 전문 청소부인 클레이튼은 어떻게든 이 일이 커지기 전에 이든스를 수습해야 할 판입니다.


여기에 또다른 변호사가 끼어듭니다. 그 사람은 U/노스의 법제부에서 일하는 카렌 크로더죠. 척 봐도 과중한 책임에 시달리는 것이 눈에 보이는 크로더는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방법이건 다 쓸 생각입니다. 말 그대로 '어떤 방법'이어도 돼요.


그렇다면 그 문제의 사건은 뭘까요? U/노스가 만든 제초제가 알고 봤더니 인체에 유독해서 사상자가 났고 회사에서는 그 유독성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거죠. 하지만 이 영화에서 사건 내용 자체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고 그렇게 깊게 다루고 있지도 않습니다. 그럴 필요도 없고요. 이건 맥거핀이에요. 제초제가 아니라 뇌물사건일 수도 있고 회사 간부의 뺑소니 사건일 수도 있죠. 어느 경우건 세 변호사들의 행동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겁니다.


겉보기엔 스릴러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마이클 클레이튼]은 사실 캐릭터 스터디에 치중한 도덕극입니다. 양극에 선 이든스와 크로더를 설정하고 그 사이에서 다소 중립적인 인물인 클레이튼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보여주는 것이 목표죠. 그리고 영화는 거의 완벽하게 성공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갑자기 정신이 나간 이상주의적인 기사인 이든스와 현실주의자인 클레이튼, 회사를 위해 어떤 희생도 감당할 수 있는 신경질적인 크로더는 모두 각자의 위치를 대변할 뿐만 아니라 영화의 드라마에 적절한 시적 균형을 잡아주죠.


단지 영화의 결말은 좀 약한 것 같습니다. 제시되는 문제와 그 해결방법이 너무 쉬워요. 어떻게든 결말을 내고 영화를 끝내고 싶었겠지만, 세상이 그렇게 쉽지 않다는 건 여러분도 알고 토니 길로이도 알죠.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마이클 클레이튼]의 결말은 사건의 해결이 아니라 또다른 사건의 시작이에요. 증거조작, 논점 돌리기, 꼬리 자르기, 인격모독으로 이어지는 진흙탕 싸움을 다룬 만들지 않은 속편이 남아있는 겁니다. (07/11/16)


★★★☆


기타등등

중간중간에 언급되는 판타지 소설 [Realm and Conquest]는 지어낸 책이에요. 아마존 뒤지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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