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터너 La Tourneuse de pages (2006)

2010.02.01 06:57

DJUNA 조회 수:3225

감독: Denis Dercourt 출연: Catherine Frot, Déborah François, Pascal Greggory, Xavier De Guillebon, Clotilde Mollet, Julie Richalet 다른 제목: The Page Turner

[페이지 터너]의 주인공 멜라니는 목표지향적이고 뒤끝이 엄청 깁니다. 이상적인 복수자로 태어난 아이죠. 이 아이가 복수의 대상으로 삼은 사람은 피아니스트 아리안입니다. 어린 멜라니가 오디션을 보는 동안 심사위원으로 심사를 맡고 있던 중, 팬에게 사진에 사인을 해 준다고 한눈을 팔아 멜라니의 집중력을 떨어뜨린 죄죠. 아리안은 그 아이의 존재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 이후로 피아노를 포기하게 된 멜라니는 아리안을 지옥으로 떨어뜨리기로 맹세합니다.

[페이지 터너]는 할리우드식 서스펜스물이 아닙니다. 이 영화에는 멜라니와 아리안의 지능대결 같은 건 없어요. 멜라니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우위에 있고 아무 영문도 모르는 아리안은 서서히 멜라니의 그물 속으로 말려듭니다. 이 영화를 즐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마치 잘 우려낸 차를 천천히 음미하듯 멜라니의 계획이 펼쳐지는 것을 감상하는 것입니다.

멜라니는 관객들에게 전혀 마음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럴 필요도 없고요. 멜라니에게는 관객들에게 공개할만한 내면의 갈등이 없습니다. 아리안의 남편 장이 운영하는 법률회사에 인턴으로 들어가 부부의 베이비시터가 되고 아리안의 악보 넘겨주는 사람이 되는 과정은 멜라니에겐 드라마가 아닙니다. 전부터 머릿속에 다 들어있던 것들이 현실 세계에서 반복되고 있을뿐이니까요. 그 뒤에 일어난 일들엔 어느 정도 임기응변이 개입되었겠지만 그래도 멜라니의 기본 계획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바뀌지 않습니다. 멜라니는 차고 냉정하고 끝까지 일관성을 잃지 않습니다. 사람보다는 대리석 여신상 같아요.

이 영화에서 진짜 주인공 역할을 하는 인물은 희생자인 아리안입니다. 멜라니는 단순히 아리안을 공격하는 게 아니거든요. 훨씬 야비합니다. 기본적으로 '줬다가 빼앗기'지요. 아무 것도 모르는 아리안은 이 냉정한 복수자에게 거의 맹목적으로 의지하다가 결국 사랑에 빠져버립니다. 이 심리묘사는 아주 상세하게 그려져 있는데, 보다보면 조금 찔립니다. 관객들은 아리안에게 어떤 악감정도 가지고 있지 않지만 그래도 이 캐릭터가 계획대로 몰락하길 말없이 기다리게 되거든요.

멜라니와 아리안의 이야기가 처음부터 끝까지 그들이 속해 있는 경제적/성적 계급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도 지적하게 되는군요. 시작부터 피아노 레슨이 사치이고 오디션이 평생에 한번 올까말까한 기회인 푸주간집 딸과 자신을 아름다운 소유물처럼 여기는 남편 덕택에 자신 것이 아닌 부를 덤으로 누리고 있는 부르주아 중년여성의 대결이잖아요. 멜라니의 복수라는 것도 일차적으로 아리안이 가진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이고. (07/10/05)

★★★

기타등등

데보라 프랑스와도 좋았지만 전 아역을 맡은 줄리 리샬레가 더 섬뜩하더군요.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