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2001: A Space Odyssey (1968)

2010.02.18 20:52

DJUNA 조회 수:40195

 

파프리카 SF의 목적이 미래 예측은 아니지만 그래도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보면서 영화 속의 2001년과 우리가 살고 있는 2001년을 비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달라도 참 많이 다르지 않아요? 우린 간신히 인간을 달로밖에 쏘아올리지 못했지만 영화 속에서는 달에 대규모의 기지를 건설했고 화성에 인류를 보냈으며 목성에 최초의 유인 우주선을 보내는 중입니다. 그뿐인가요. 생각하는 컴퓨터가 나왔는데다가, 우주선은 이미 핵융합 엔진을 사용하고... 영화를 보면 현대가 조금 실망스러워요.

 

듀나 아뇨, 전 꼭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는데요? 보이저나 파이오니어의 업적을 생각해봐요. 인간을 보내지 못했을지는 몰라도 우리는 이미 태양계 끝까지 가봤습니다. 화성에도 여러 대의 우주선들을 착륙시켰고요. 생각하는 인공 지능은 아직 만들지 못했을지 몰라도 퍼스널 컴퓨터와 인터넷이 세상을 바꾸어놓은 걸 보라구요. 우린 영화에 뒤처진 게 아닙니다. 단지 다른 식으로 발전한 것이죠.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영화가 만들어진 1960년대 사람들의 세계관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보여주는 2001년은 60년대의 세계가 질적 변화 없이 양적으로만 발전한 세계입니다. 여전히 여자들은 60년대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고, 아이들은 전화가 가장 신기한 기계인줄 알며, 구식 양복을 입은 남자들은 모두 뉴스 앵커같은 어투로 이야기를 하죠. 냉전 시대는 계속되고 있고 모두 그 거대한 두 세계의 한 쪽에 속해있는 것에 대해 안심하는 듯 합니다.

 

파프리카 하긴 꼭 60년대 영국 패션 모델처럼 생긴 스튜어디스들이 오락가락하는 팬암 정기 우주선을 보라고요!

 

듀나 팬암 사람들이 그 영화를 보면 지금도 맘이 아플 거예요. 영화에서는 우주로 사람들을 보내는데, 실제 세계에서는 국내선으로 축소되었으니 말이에요.

 

그러나 여전히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현대적이고 신선한 영화입니다. 전에 저에게 했던 질문을 다시 한 번 해보겠어요?

 

파프리카 [스타 워즈]는 만들어진지 20년만에 허겁지겁 감독판을 만들어내야 할 만큼 기술이 낡아보이는데,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그렇지 않은 이유는 뭐냐고요?

 

듀나 맞아요. 정말 이상하죠? [2001:스페이스 오디세이]가 선사하는 화면은 지금봐도 낡은 구석이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스타 워즈]의 특수 효과는 블루 스크린 작업 중 생긴 검은 선들로 가득 하죠.

 

[스타 워즈]의 기술이 퇴보한 것은 아닙니다. 두 영화 모두 같은 기술을 사용했지요. 정교한 모형과 모션 콘트롤 카메라, 블루 스크린 말이에요. 하지만 조지 루카스가 그 기술이 표현할 수 있는 것 이상의 것에 겁없이 도전했던 것과는 달리 스탠리 큐브릭은 그 기술의 한계 안에 영화의 특수 효과를 정확히 끼워맞추었습니다. 그 뒤부터는 인내와 완벽주의의 승리였지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아날로그 시대의 특수 효과가 보여줄 수 있는 완벽함의 절정을 보여줍니다. 구식 진공관 앰프가 그런 것처럼 이 영화가 만들어낸 화면에는 현대 디지탈 특수 효과가 따를 수 없는 멋이 있죠. 아무리 디테일이 완벽해도 어딘지 모르게 그림처럼 보이는 3차원 그래픽과는 달리 이 영화의 모델들에는 강한 존재감이 느껴집니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여전히 현대적으로 보이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이 영화가 실제의 물리 법칙을 따르는 사실적인 SF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이런 영화들은 굉장히 드물지요. [딥 임팩트]나 [아마게돈]처럼 근미래나 현대를 다루는 영화들도 늘 컴퓨터 그래픽의 자유로움에 홀려 실제 이상으로 액션을 과장하고 맙니다. 하지만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다르지요. 우주선은 느리고 둔중한 관성 운동을 하고 스페이스 퍼드는 둔하기 짝이 없으며 우주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파프리카 아주 완벽하게 물리 법칙을 따랐다는 생각은 안드는데요? 예를 들어 디스커버리호가 움직이는 걸 보면 뒤에 별이 흘러가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이럴 경우 별이 고정되어 보인다는 건 버스를 타고 창밖을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지요.

 

듀나 우주선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보여주어야 하니까요.

 
파프리카 달과 스테이션, 우주선의 중력 묘사는 어때요?
 
듀나 맞아요. 그 부분은 조금 이상하죠. 모두들 1G의 환경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움직이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저중력 묘사는 생각만큼 쉽지 않을 거예요.

 

파프리카 왜요? 대충 연기로 커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에어록 장면에서 프랭크와 데이브는 마치 자기네들이 저중력 상태에 있는 것처럼 움직이지 않던가요?

 

듀나 그러고보니 달기지를 무대로 한 텔레비전 시리즈 [스페이스: 1999]가 생각나네요. 그 사람들은 기지 안에서는 정상적으로 움직이다가 우주복을 입고 밖으로 나가면 저중력 상태라는 걸 그때야 알았다는 것처럼 느린 동작으로 움직이곤 했어요. 그런데 잠시 달에 대기가 들어오자 밖에서도 정상적으로 움직이더군요!

 

파프리카 그러보니 지금까지 정작 영화의 내용 자체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네요.

 

듀나 아, 줄거리 요약 시간인가요. 좋아요, 제가 하죠.

 

영화는 대충 네 부분으로 나뉘어집니다. 1부는 인류의 여명입니다. 아직 채 털가죽도 벗지 못한 인류의 조상이 바짝 마른 아프리카에서 간신히 살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 앞에 외계에서 온 신비의 모노리스가 나타나죠. 모노리스의 영향을 받은 최초의 원시인 문와처는 리햐르트 스트라우스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배경음악으로 깔며 인간 등정의 첫발을 디딥니다.

 

2부는 2001년으로 훌쩍 건너뜁니다. 미국 달기지 과학자들은 티코 분화구에서 강한 자기장을 내는 물체를 발견합니다. 그래서 한 번 파봤더니 300만년 전에 누군가 묻어놓은 모노리스였어요. 첫번째 태양이 표면에 닿은 바로 그 순간, 모노리스는 우주 어딘가로 강한 신호를 보냅니다.

 

3부는 18개월 후입니다. 무대는 목성 우주선 디스커버리입니다. 이 우주선의 총책임자는 생각하는 인공지능 HAL 9000입니다. 임무와 원칙 사이에서 갈등하다 실수를 저지르기 시작하던 HAL은 승무원들이 자신을 기능정지시키려는 음모를 꾸민다는 걸 알아차리고 그들을 살해하기 시작합니다.

 

4부는 목성 궤도입니다. 간신히 HAL과의 결투에서 살아남은 디스커버리의 선장 데이브 보먼은 목성 궤도에 떠다니는 세번째 모노리스를 만납니다. 그가 모노리스에 접근하자 모노리스는 스타게이트를 열고 그는 미지의 우주로 빨려듭니다. 그가 도착한 곳은 고풍스러운 유럽식 저택 내부와 같은 곳으로, 그 안에서 보먼은 새로운 신 또는 진화의 다음 단계인 스타 차일드로 다시 태어납니다.

 

이 영화의 각본은 아서 C. 클라크의 단편 [파수병]에서 아이디어를 얻고 있습니다. 이 단편에서 지구인들은 달에 묻혀 있던 신비의 피라미드를 발견하는데, 그 피라미드는 지구에 지성을 가진 생명체가 등장했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기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단편은 여기까지가 끝으로, 그 뒤의 모험담은 클라크와 큐브릭이 나중에 창작해낸 것입니다.

 

영화는 큐브릭과 클라크의 개성을 모두 담고 있습니다. 클라크 특유의 인류 진화에 대한 종교적인 집착과 이성과 과학에 대한 낙천주의는, 인간과 과학 문명에 대한 큐브릭의 냉정한 비전과 날카로운 대조를 이룹니다. 종종 이 둘은 같은 작품 안에서 충돌하는 것 같기도 해요. 클라크의 비전을 보다 많이 담고 있는 소설 버전을 읽으면 그 차이를 알 수 있습니다.

 

파프리카 굉장히 할 말이 많은 영화지요. 영화는 우주와 인간의 관계에 대해, 인류 진화의 방향에 대해, 전혀 다른 종류의 지성이 어떻게 의사 소통할 것인가에 대해 묻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질문만 던질 뿐 해답은 주지 않습니다. 그나마 가설이라도 던지는 소설 버전과는 달리 영화는 순수한 미스터리의 영역으로 관객들을 던져 넣습니다. 큐브릭에게 이런 질문들은 과학보다는 종교의 영역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당시 많은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면서 일종의 종교적 체험을 한다고 생각했지요.

 

사실 영화는 따지기 시작하면 맥이 풀립니다. 아주 좋은 구성의 작품도 아니잖아요? 특히 3부는 전후의 다른 부분과 내용과 주제 면에서 차이가 너무 심합니다.

 

듀나 클라크는 원래 그런 헐렁한 구성의 작품을 많이 썼지요. 그 사람의 [낙원의 샘]을 보세요. 궤도 엘리베이터에 대한 이야기가 엉뚱하게 구출 작전으로 끝나잖아요. 읽다보면 그런 흐트러진 느낌이 오히려 클라크의 매력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파프리카 하여간 이 영화는 구체적인 사고보다는 보다 추상적인 체험을 위한 작품입니다. 관객들은 우주와 시간의 거대함, 스타게이트 너머에 펼쳐지는 초자연적인 경험에 압도당합니다. 우리는 여전히 그 속에서 튀어나오는 철학적인 질문들을 즐깁니다만, 그 즐거움은 질문 자체의 거대함과 깊이에 있지 해답이나 설명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종종 우리는 우리가 아주 작고 하찮은 존재라는 사실에 쾌락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듀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시청각적으로 무척 아름다운 영화입니다. 특히 요한 스트라우스 2세의 [아름답고 푸른 다뉴브 강]이 흐르는 동안 거대한 우주선이 우아한 새처럼 날아다니는 장면 같은 걸 보세요.

 

파프리카 하긴 이 영화의 클래식 음악 활용은 굉장히 강한 인상을 남깁니다. 특히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더이상 별개의 작품으로 상상할 수 없으니까요.

 

듀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그냥 편하게 볼 수 있는 영화는 아니죠. 영화를 보면서 관객들은 상당한 중노동을 해야 합니다. 다른 킬링 타임 SF 영화에서와는 달리 관객들은 적극적으로 화면을 응시합니다. 보먼이 스페이스 퍼드로 프랭크 풀의 시체를 나꿔채는 장면을 보세요. 화면 위에서 프랭크의 몸은 하나의 점으로 등장합니다. 관객들은 데이브와 함께 숨은 그림 찾기를 하듯 그 시체를 함께 찾아야 해요. 영화 전체가 이런 집중을 요구하기 때문에 영화가 끝나면 꽤 피곤해집니다.
 
파프리카 큐브릭 특유의 최면술 요법도 가세했겠죠. 화면의 중앙을 보거라... 너는 서서히 최면에 빠진다... 이 영화는 어마어마하게 깊이 있는 영화다...

 

듀나 하긴 관객들과 비평가들이 지금도 큐브릭의 최면에 빠져 있는 것일 수도 있겠군요.

 

파프리카 왜 아직도 달에 안가는 거래요? 왜 2001년이 되었는데도 우주는 SF의 영역인 겁니까?

 

듀나 이득이 있어야지요. 6,70년대의 우주개발은 정치적인 목적이라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것도 없으니까요. SF 작가들이 우주 개발 경쟁에 그렇게 흥분했던 건 분명 실수였어요. 클라크 소설에서 나온 것처럼 실용적인 핵융합 엔진이 나와 우주 여행 비용이 엄청 싸지지 않는 한 한동안은 궤도 밖을 나가는 건 어림 없을 걸요.

 

파프리카 그래도 달에 갈 수 있으면 좋을텐데.

 

듀나 가면 티코 크레이터에 가서 모노리스라도 나오나 삽으로 파볼 거예요?

 

파프리카 아니면 다른 거라도요. 누가 알아요? 회색 외계인의 미이라라도 나올지. (01/06/27)

 

기타등등

이 영화로 큐브릭은 생애 유일의 아카데미 상을 수상했습니다. 최고 시각 효과상이었지요.

 

[스페이스: 1999]의 언급에 대해 지적이 있었으니 다시 이야기하죠. 이 시리즈에 인공 중력의 개념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개념은 이상해요. 중력탑 안에 있는 외부에서 사람들은 여전히 저중력 상태인 것처럼 움직이니까요. 그러나 달에 대기가 들어오는 'Last Sunset' 에피소드에서 잠시나마 인공중력이 들어온 건 사실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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