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쟁이는 무릎을 꿇는다]에서 가이 매딘은 일종의 실험고고학적 게임을 했습니다. 관객들은 6분짜리 10개의 장들로 쪼개진 이 한 시간 짜리 영화를 벽에 줄 지어 뚫어놓은 구멍들을 통해 하나씩 봐야했지요. 올해 Senef에서 관객들은 재미없게 그냥 극장에서 스크린에 영사된 화면을 볼 수밖에 없었지만요. 한 번 원래 의도대로 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랬다면 이 공공연한 염탐 행위로 인해 영화의 음탕한 느낌이 훨씬 더 살았을텐데요.


[겁쟁이는 무릎을 꿇는다]는 무성영화로 찍은 필름 느와르입니다. 주인공 가이 매딘(네! 감독과 이름이 같습니다)은 잘 나가는 하키 선수입니다. 하지만 여자친구 베로니카가 임신하게 되면서 그의 비교적 단순한 삶은 망가지기 시작하죠. 여자친구의 낙태수술을 위해 미용실로 위장한 매음굴을 찾아간 그는 매음굴의 주인인 릴리옴의 딸 메타에게 반해버리고 맙니다. 하지만 메타에게는 또다른 계획이 있었으니, 그건 아버지를 살해한 엄마와 엄마의 정부이고 매딘과 같은 하키팀의 선수인 셰이키에게 복수를 하는 것이었죠.


[겁쟁이는 무릎을 꿇는다]는 가이 매딘 팬들이 쉽게 예측할 수 있는 그런 영화입니다. 네, 당연히 무성 영화입니다. 화질은 50년은 창고에서 썩은 것처럼 엉망이고요. 스테레오타입들이 기계적인 동기와 행동을 보여주는 멜로드라마 역시 20년대의 무성 영화식입니다. 하지만 그 깜빡이는 화면을 뒤흔들고 짜맞추는 스타일은 무성영화를 흉내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은근히 21세기식이고, 구닥다리 멜로드라마와 같던 이야기는 어느 순간부터 비논리를 날개처럼 달고 초현실주의적인 망상 속으로 몸을 던집니다.


하지만 매딘은 그의 이 새 영화에서 새로운 요소를 추가했습니다. 아편처럼 나른한 인공 천국(또는 지옥)으로 안내하던 그의 기존 영화들과는 달리 [겁쟁이는 무릎을 꿇는다]는 빠르고 박진감 넘치며 재미있는 영화입니다. 매딘의 영화 세계에 입문하려는 사람들에겐 이 작품을 먼저 보여주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이전의 영화들에 비해 특별히 덜 괴상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관객들을 지루하게 하지는 않을테니 말이죠.


아마 이 놀라운 속도감의 원인은 '연재물'이라는 형식일 겁니다. 당연하지 않겠어요? 이 형식에선 느긋하게 낭비할 시간이 없지요. 6분마다 그럴싸한 구경거리와 스토리 전개를 끌어내야 하니 말이에요. 한시간이라는 비교적 짧은 러닝 타임도 도움이 되었겠지요.


재미있는 건 이런 압축된 스토리 전개와 속도감이 매딘 영화의 꿈결같은 느낌을 전혀 망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더 강해진 것 같아요. 살인과 섹스, 누드, 신체 절단으로 가득 찬 말도 안되는 이야기가 속사포처럼 던져지는 동안 관객들은 이야기의 부조리함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여지없이 그냥 이야기를 받아들이게 되고 그 사고의 부재 속에서 영화는 '예술영화'의 인공 감미료가 제거된 사악한 꿈 그 자체가 됩니다.


종종 사람들은 매딘의 가짜 무성 영화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언제까지 이 속임수가 먹힐 수 있을까?"하고 궁금합니다. [겁쟁이는 무릎을 꿇는다]를 보다보면 여기에 대한 답이 나옵니다. 그가 평생 동안 이런 영화만 만들어도 이상할 건 없다는 거죠. 어떤 예술가가 특정 시대에 잠시 반짝거렸던 특정 표현법에서 자신의 예술적 뿌리를 찾아내고 그를 이용해 양질의 작품들을 꾸준히 만들어낸다면 우리가 그의 생산성을 의심할 필요는 없겠지요. (04/09/22)


★★★☆


기타등등

디지탈 프로젝터로 상영된 영화입니다. 화질이 화질이다보니 자막만 빼면 전혀 다른 걸 느끼지 못할 수준이지만 그래도 매딘의 영화를 디지탈로 본다는 것 자체는 좀 어색하게 느껴지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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