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애인을 만나다 (2006)

2010.03.06 18:11

DJUNA 조회 수:5151

감독: 김태식 출연: 박광정, 정보석, 조은지, 김성미, 오달수, 유연수 다른 제목: Driving With My Wife's Lover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의 설정은 간결하고 명확합니다. 거의 리메이크 판권을 팔아먹어도 될 정도죠.

그게 이렇습니다. 아내가 바람을 피운다는 걸 알게 된 남자주인공 태한은 어느 여름 날, 아내의 불륜 상대인 택시 운전사 중식이 사는 서울로 찾아갑니다. 그리고 그의 택시를 타고 다시 집이 있는 강원도 낙산으로 가죠. 그는 당장이라도 중식에게 자신이 누군지 밝히고 심지어 복수까지도 하고 싶지만 소심한 성격 탓에 택시 뒷좌석에 쭈그리고 앉아 있기만 합니다. 그러는 동안 중식은 자신의 여성편력을 과시하며 '세상에 불륜은 없어요. 사랑만 있을 뿐이지!' 따위의 소리나 늘어놓고 있으니 복장이 터지죠. 게다가 단순할 것 같았던 이 장거리 여행은 예상 못한 복병들을 만나면서 자꾸 어긋나기 시작합니다.

태한이 조금만 더 적극적이었다면 이 영화는 시작도 하지 못하고 끝났을 겁니다. 하지만 육체적으로 왜소하고 직업도 별로이고 모아 둔 돈도 별로 없는 태한에겐 중식에게 덤벼들 자신감이 없습니다. 차라리 자존심을 포기하면 그래도 편할 텐데, 그는 그것도 못하죠. 한마디로 그는 최악의 위치에 있는 최하위의 수컷입니다. 그가 가끔 수탉의 환상을 보는 것도 당연해요.

태한의 문제점은 이게 끝이 아닙니다. 그는 보기보단 섬세하고 영리한 남자예요. 한 마디로 그는 단순하게 행동하기엔 지나치게 생각이 많고 불필요하게 많은 걸 봅니다. 덕택에 보통 남자라면 10분 만에 끝을 냈을 이야기가 한시간 반을 끕니다. 그 동안 그는 복수 대상인 중식과 괴상한 유대 관계를 맺고 중식의 여자친구인 소옥과는 더 깊이 나가며 마침내 그가 한 복수는 아주 괴상한 모양을 취하게 됩니다.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는 다소 우울한 코미디입니다. 관객들이 '와하하' 웃어넘기고 잊어버리기엔 태한의 상황이 너무 난감하고 지나치게 현실적이죠. 그는 결코 해피엔딩을 맞을 수 없는 어릿광대입니다. 우린 그가 영화가 끝날 때까지 계속 위축될 것이고 결코 자신의 소극적인 성격이 쌓은 담장을 무너뜨리지 못할 거라는 걸 압니다. 그리고 그게 '위축된 수컷'이라는 동물에 대한 아주 정확한 기술이라는 것도요.

경력 처음으로 주연을 맡은 중견 배우 박광정은 이런 태한의 캐릭터를 거의 이상적으로 그려냅니다. 과묵한 한국판 우디 앨런이랄까요. 얄팍하고 낙천적인 택시운전사 정부인 정보석의 경박하고 발랄한 연기도 그와 이상적인 대조를 이룹니다. 김태식의 연출은 정공법으로 치고 나가면서도 종종 거의 초현실적인 장면들로 빠지는데, 그 중 몇 개는 먹히고 몇 개는 먹히지 않으며 종종 둘 다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자주 언급되는 굴러가는 수박 장면은 인상적이지만 감독이 나중에 그 의미를 설명할 때는 좀 맥이 풀리더군요. (07/04/03)

★★★

기타등등

그래도 서울에 사는 택시운전사가 낙산에 있는 유부녀랑 놀려면 시간과 돈이 많이 만만치 않게 들 것 같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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