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트 콘택 Star Trek : First Contact (1996)

2010.03.22 00:07

DJUNA 조회 수:6512

감독: Jonathan Frakes 출연: Patrick Stewart, Jonathan Frakes, Brent Spiner, LeVar Burton, Michael Dorn, Gates McFadden, Marina Sirtis, Alfre Woodard, James Cromwell, Alice Krige

1.

트레키들과 트레키가 아닌 사람들을 모아서 [스타 트렉] 시리즈를 상영하는 영화관 안에 밀어 넣어 보세요. 나중에 나오는 사람들을 인터뷰해보면 두 부류의 사람들이 전혀 다른 영화를 보았다는 걸 알게 될 겁니다. 어떤 때는 그 차이가 너무 커서 트레키들이 보통 사람들과 전혀 다른 미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죠.

그 차이의 원인은 정보의 양과 친숙한 정도의 차이입니다. 영화가 시작하면 트레키들은 아주 익숙한 세계에 사는 익숙한 사람들 앞에 던져집니다. 하지만 트레키가 아닌 사람들에게 이 세계는 혼돈이죠. 아무도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설명해주지 않는 건 이해가 가겠는데, 생전 첨 보는 캐릭터들이 태평스럽게 아는 척 해대는 데까지 이르면 정말 황당해집니다.

이건 비디오 가게에 들러 예전에 나온 [스타 트렉] 시리즈를 빌려다 보는 것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 역시 작은 부분에 불과하니까요. 그러니 이걸 어쩌란 말입니까.

2.

[퍼스트 콘택] 역시 중간에서 시작합니다. 도대체 보그족이 어떤 존재인지, 왜 피카드 선장이 보그족에 그렇게 이를 가는지는 설명도 하지 않고 영화가 시작되지요. 나중에 부연 설명이 나오기는 하지만 그것은 피상적인 정보 제공에 불과할 뿐, 이 영화를 독립적으로 만들만큼 충분한 무게의 도입부를 제공하지는 않습니다. 피카드의 분노를 충분히 이해하려면 일단 TNG에 있었던 피카드 납치 에피소드를 봐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꼭 독립적인 영화만 즐길 수 있는 것도 아니지요. 이런 설명만 대충 훌렁훌렁 삼키고 넘어가면 [퍼스트 콘택]은 예상 외로 트레키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꽤 재미있습니다.

3.

[퍼스트 콘택]의 기본 설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보그 족들은 21세기 중반의 과거로 돌아가 지구인과 외계인의 최초 접촉을 막으려 하고, 얼떨결에 같이 과거로 쓸려간 엔터프라이즈 E호의 승무원들은 그걸 또 막으려 합니다.

액션은 둘로 나뉩니다. 디애너 트로이와 라이커 일행은 지구인과 외계인의 첫 만남을 이루기 위해 코크레인 박사의 첫 워프 비행을 돕고, 피카드 선장 일행은 엔터프라이즈 E호에 침입한 보그와 싸웁니다. 시작은 같지만 두 액션은 연결이 거의 없고 또 성격도 다르기 때문에 전혀 다른 영화 둘이 얼기설기 엮여져 있다는 느낌까지 듭니다.

그러나 각각 이야기들은 모두 나름대로 흥미롭습니다. 첫번째 이야기는 낙천적이고 따뜻한 코미디입니다. 라이커 일행의 가장 큰 위기는 부서진 워프 우주선이 아니라 미래의 명성에 겁을 먹은 워프 우주선 발명가 코크레인 박사입니다. 영웅을 직접 만나 황홀해진 엔터프라이즈 호 승무원들과 "난 동상이 되기 싫어!"를 외쳐대며 달아나는 코크레인의 줄다리기는 좋은 의미에서 희극적입니다.

제임스 크롬웰이 이 유쾌한 싸움을 잘 살려주어서 영화는 더 맛이 삽니다. 그의 존재는 이 이야기 줄기를 가벼운 패러디처럼 만듭니다. 아마 열혈 트레키는 아니지만 그래도 스타 트렉 우주에 친숙한 관객들이 가장 쉽게 동화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닐까요?

트레키들을 위한 잔 선물들도 있습니다. 코크레인 박사의 워프는 [스타 트렉] 우주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 중 하나이므로 이 사건에 대한 기초 지식이 있는 사람들은 쿡쿡 웃으며 행복해 할 수 있죠. 게다가 디애너 트로이가 술에 취해 주정하는 장면을 다른 어떤 에피소드에서 볼 수 있겠어요?

두번째 액션은 보그 족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찬 피카드 선장과 보그 족의 대결입니다. 상당한 사상자가 나는 심각한 싸움이죠. 피카드 선장은 개인적인 복수심 때문에 이성을 잃고, 데이터는 또 다시 인간성에 대한 열망과 마주칩니다. 그리고 이들은 으스스하면서도 기묘하게 매력적인 보그 여왕과 상대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스타 트렉]식 형이상학이 끼어듭니다. 인간성이란 무엇인가, 집단 속의 개성은 왜 중요한가... 해답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스타 트렉] 식 지버리시로 치장한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노라면 이 아이디어를 엮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드라마도 풍부합니다. 우선 늘 완벽해 보이기만 하던 피카드가 복수의 망집에 빠져 있기 때문에 드라마의 방향은 상당히 불안해집니다. 어쩌다 말려든 21세기인인 릴리와 피카드의 관계도 흥미진진하고요.

게다가 유혹적인 보그 여왕이 있습니다. 전 이 캐릭터를 연기한 앨리스 크리지를 좋아해요. 이 사람의 어둡고 축축한 섹슈얼리티는 보그 여왕 역에 참 잘 맞아서 영화는 은밀한 성적 긴장감으로 가득 찹니다. 7 of 9이 등장하기 전까지 여왕은 [스타 트렉]에 나오는 보그 중 가장 미인이기도 했지요. :->

4.

두 이야기 줄기는 코크레인 박사의 첫 워프가 성공해서 발칸 인들이 지구에 착륙하는 것으로 마무리 지어집니다. 이 장면은 참 복고적이에요. 너무나 지구인처럼 생긴 발칸 인들과 기적같이 손쉬운 만남은 스토리의 리얼리티를 떨어뜨릴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멋대로 역사를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어쩔 수 없었겠지요. (99/06/18)

기타등등

1. 이 영화는 라이커 역의 조나단 프라익스의 영화 감독 데뷰작입니다. 특별히 영화적 개성을 찾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영화에 잔뜩 묻어 있는 [스타 트렉] 우주에 대한 애정은 감독한테서 온 것이겠지요.

2. 재미있는 우연의 일치가 있습니다. 후반부에 릴리가 보그 족과 결전을 준비하는 피카드를 에이허브 선장에 비교하는 장면이 나오지요. 나중에 패트릭 스튜어트는 정말로 미니 시리즈 [모비딕]에서 에이허브 선장 역을 연기합니다!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