캣 피플 Cat People (1982)

2010.02.13 16:28

DJUNA 조회 수:188611

감독: Paul Schrader 출연: Nastassja Kinski, Malcolm McDowell, John Heard, Annette O'Toole, Ruby Dee, Ed Begley Jr.

(스포일러가 있어요.)

[캣 피플]을 리메이크한다는 폴 슈레이더의 기획은 생각만큼 바보스럽지는 않았습니다. 원작은 장르 세계에서는 중요한 걸작 대접을 받고 있고 마틴 스콜세지 같은 사람은 그 영화를 [시민 케인]과 동급으로 치기도 하지만 장르밖에서는 여전히 그렇게까지 잘 알려진 작품은 아니었죠. 원작의 은밀한 영화적 암시들을 지워내고 시뻘건 선혈과 섹스를 더한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원작에 충실하기만 하면 아류작밖에 만들 수 없죠. 이런 경우 같은 주제와 소재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다루는 것도 괜찮은 시도입니다.

폴 슈레이더의 [캣 피플]은 굵직하고 용감한 영화였습니다. 흥미로운 설정도 많았고요. 관객들도 자극하는 데에도 성공해서 당시에 꽤 유명한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원작보다 슈레이더의 영화에 더 친숙한 사람들이 많을 거예요. 하긴 원작은 요새 찾기 쉽지 않은 작품이니 일대일 경쟁이 어렵긴 하지만요.

슈레이더는 원작에서 캣 피플이라는 설정과 캐릭터들의 세례명, 삼각 관계의 구도, 몇몇 유명한 장면들을 빌려왔지만 이야기를 끌어가는 설정은 거의 전적으로 새로 쓰여진 것입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아요. 주인공 아이리나는 고아가 된 뒤로 떨어져 지냈던 오빠 폴을 만나러 뉴 올리언즈로 옵니다. 폴은 그 다음날 실종되고 동물원을 방문한 아이리나는 거기서 일하는 직원 올리버와 사랑에 빠집니다. 그러는 동안 수수께끼의 흑표범이 도시에서 인간 사냥을 벌이죠.

영화는 원작과는 달리 캣 피플의 설정을 보다 분명하게, 그리고 보다 자극적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아마 여기서 가장 자극적인 이슈는 근친상간이겠죠. 인간과 표범의 중간에 있는 캣 피플은 근친상간적인 종족입니다. 이들은 남매끼리 결혼해서 종족을 유지해야 하죠. 만약 캣 피플의 일원이 가족밖의 사람들과 섹스를 한다면 그 일원은 곧 표범으로 변합니다. 표범에서 다시 사람으로 돌아오려면 누군가를 죽여야 하고요.

슈레이더의 각본은 섹스와 금기의 결투와도 같습니다. 특히 아이리나는 사정이 딱하죠. 사랑하는 남자친구 올리버와 하는 평범한 섹스는 금지되어 있어요. 금기가 아닌 유일한 섹스는 오빠 폴과 하는 것이고요. 어느 쪽으로 가려고 해도 뭔가 밟히는 겁니다. 저 같으면 그냥 편하게 독신으로 살다 죽겠지만 아이리나는 그러지도 못합니다.

슈레이더의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핏빛으로 꿈틀거립니다. 전신누드와 적당히 괜찮은 특수분장을 동원한 잔인무도한 살인 장면이 겁없는 야수들처럼 튀어나오지요. 근사하게 캐스팅된 나스타샤 킨스키와 말콤 맥도웰의 존재감 역시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이들은 가만히 서 있는 동안에도 동물적이고 야만적인 분위기를 줄줄 흘리니까요. 특히 나스타샤 킨스키는 거의 완벽한 고양이 여인입니다.

그러나 지금와서 보면 슈레이더의 [캣 피플]은 그렇게까지 효과적인 영화는 아닙니다. 80년대식 자극은 어느 정도 약발이 닳았어요. 자주 튀어나오는 섹스신이나 전신누드 장면들은 이제 거의 지겨울 지경입니다. 가끔 영화가 원작을 흉내내는 장면들을 보면 (특히 수영장 장면은요) 원작이 나았다는 생각만 들고 원작을 빌려온 장면들은 슈레이더의 원래 이야기와 조금씩 어긋나기도 합니다. 남자 주인공 역할을 하며 나스타샤 킨스키와 맞먹는 장면들을 부여받은 존 허드는 그냥 재미가 없고요. 슈레이더가 올리버에게 대단한 개성을 주지 않은 이유는 충분히 이해가지만 그래도 허드는 너무 밍밍했어요. 차라리 80년대 살빛 영화식 야하고 느끼한 느낌이라도 있었다면 나았을 겁니다.

게다가 전 이 영화가 아이리나를 다루는 방식이 맘에 들지 않는답니다. 특히 결말은요. 아이리나는 나름대로 도덕적인 선택을 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그게 뭡니까? 동물원에 갇혀서 자길 별로 사랑하지도 않는 밍밍한 남자의 애완동물이 된다고요? 여자주인공을 섹스와 결부된 야수로 만든 영화치고는 결말이 좀 한심하지 않습니까? (05/03/14)

★★☆

기타등등

막 [스몰빌] 3시즌을 끝낸 뒤라, 아넷 오툴의 젊디젊은 모습이 참 낯섭니다. 

댓글 0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 슬리더 Slither (2006) [6714] file DJUNA 2010.01.27 189905
4 오페라의 유령 The Phantom of the Opera (1925) [105] file DJUNA 2010.02.06 9706
» 캣 피플 Cat People (1982) [6785] file DJUNA 2010.02.13 188611
2 프랑켄슈타인 Frankenstein (1931) [6356] file DJUNA 2010.02.06 101059
1 프랑켄슈타인의 신부 The Bride of Frankenstein (1935) [8449] file DJUNA 2010.02.06 1682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