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1월의 두 얼굴]은 제 어린 시절 애독서입니다. [재능있는 리플리씨] 다음에 읽었던가? 아님 이게 먼저였던가? 기억이 잘 안 납니다. 하이스미스 자신은 이 작품에 그렇게 만족하지 않았다고 하던데, 그래도 여전히 대표작 중 하나입니다. 자주 이 원작을 각색한 가상의 영화를 상상했었고 캄보디아 같은 곳을 무대로 한 한국 영화로 만들어도 괜찮을 거란 생각도 했었죠.

소설은 비서 출신인 젊은 아내 콜레트와 함께 그리스에서 여행 중인 미국인 사기꾼인 체스터 맥팔랜드가 그 나라 형사를 호텔 방에서 우발적으로 살해하면서 시작됩니다. 시체를 치우던 그는 라이달 키너라는 젊은 미국인 관광객에게 발각되는데, 라이달은 거의 충동적으로 그들을 도와주게 됩니다. 경찰에 쫓기게 된 세 명은 콜레트를 가운데에 둔 삼각관계에 말려들게 되고요. 하이스미스가 자주 다룬, 기괴한 공범 관계로 묶인 범죄자 성향의 두 남자에 대한 이야기죠. 이들의 관계는 그들 자신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복잡하고 충동적이라 애증이라는 간단한 단어로는 완전히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영화도 비슷하게 시작하긴 하는데, 자잘한 차이가 있습니다. 일단 살해당한 사람은 그리스인 형사가 아니라 미국인 사립탐정이고, 세 주인공은 살인이 벌어지기 전에 이미 만나 저녁 식사까지 같이 한 사이입니다. 라이달은 빈둥거리는 관광객이 아니라 여행 가이드고요. 결말의 무대는 파리에서 이스탄불로 옮겨졌습니다. 두 번째가 맘에 안 들긴 하지만 대충 이해가 되는 변형입니다. 하지만 가장 많이 바뀐 부분은 다른 데에 있어요.

호세인 아미니는 어떻게든 이들의 관계를 100분 안쪽의 러닝타임 안에서 이치에 맞게 설명할 수 있도록 단순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여기서 그가 원작에서 꺼내온 건 '아버지 이슈'입니다. 원작에서도 라이달은 체스터를 처음 보았을 때 막 세상을 떠난 자기 아버지의 20년 전 모습 같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그는 콜레트에게서도 그가 전에 알았던 누군가의 기억을 떠올립니다. 훨씬 복잡한 구도인 거죠. 아미니는 라이달의 과거와 관련된 이야기를 지우고 '아버지 이슈'를 전면으로 끄집어내면 이야기가 더 다루기 쉬워질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이 선택엔 문제가 많습니다. 일단 이야기 진행 방향은 여전히 하이스미스 스타일로 충동적이고 변덕스럽습니다. 아미니가 아무리 이들의 이야기를 '아버지 이슈' 그늘 안에 두려고 해도 계속 이리저리 튀어요. 이것들을 모두 하나의 테마 안에 묶어 관리하려는 각색 때문에 등장인물들의 동기와 행동은 위축됩니다. 원작에서 벌어진 일들이 영화에서도 일어나지만 그 때문에 모두 조금 변덕스럽게 행동하는 순둥이들처럼 보이죠. 중간에 일어나는 파국도 덜 끔찍하게 바뀌었고, 서로에게 저지르는 일도 많이 탈색되었어요. 그리고 각색 과정을 설명하면서 탈색이나 위축 같은 단어들이 계속 떠오른다면 그 각색엔 문제가 많은 겁니다.

비고 모르텐센, 키어스틴 던스트, 오스카 아이작은 모두 제가 선택했을 법한 배우들은 아니지만 연기의 질과 앙상블은 좋습니다. 영화의 60년대 분위기도 괜찮고요. 하지만 지나치게 60년대라는 과거와 그리스라는 관광지 이미지에 집착하다보니 시대극이라는 틀에 갇혀버리는 단점이 있습니다. 줄스 다신 같은 감독이 60년대에 당시의 현대를 배경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면 훨씬 생기있는 작품이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지금 이 영화는 지나치게 워킹 타이틀스러워요. (14/09/12)

★★☆

기타등등
개봉과 함께 새 번역본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를 했는데, 안 나오더군요. 다른 하이스미스 영화인 [캐롤]이 나올 때는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감독: Hossein Amini, 배우: Kirsten Dunst, Viggo Mortensen, Oscar Isaac, Daisy Bevan, David Warshofsky, Yigit Özsener

IMDb http://www.imdb.com/title/tt1976000/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00026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