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끝날 때까지 10억년]의 저자 보리스와 아르카디 스트루가츠키 형제는 '눈 유니버스'라는 세계를 배경으로 한 SF 연작을 썼는데, 대부분 같은 세계를 배경으로 한 SF 연작들이 그렇듯 처음부터 연작으로 쓸 생각은 없었다죠. 하여간 이들이 그리고 있는 세계는 공산주의 혁명이 성공한 미래의 지구인들이 거의 순간 이동이 가능한 우주선을 타고 우주로 진출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우주는 수많은 지적 생명체들로 가득 차 있고 그들 중 일부는 인간처럼 생겼죠. 이들 중 또 몇몇은 지구보다 문명이 뒤쳐져 있어서 지구인들은 몰래 이들의 역사에 참견해 발전을 가속시키려고 합니다.

[신이 되기는 어려워]는 [눈 유니버스]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입니다. 가장 인기있는 소설이기도 하고요. 1989년에 독일과 소련 합작으로 한 번 영화화되었고 (베르너 헤르조크가 주연이었다고 합니다), 속편격인 게임으로도 나왔으며, 2013년에 제가 오늘 소개할 러시아 영화가 나왔죠.

영화의 무대는 지구와 아주 똑같이 생긴 행성입니다. 지구인처럼 생긴 사람들과 지구 동물들처럼 생긴 동물들이 살아요. 단지 이들의 문명은 지구 유럽의 중세에 가깝습니다. 아니, 지구 유럽의 중세를 몇백 배 흉악하게 만든 곳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하겠군요. 늘 비가 내리고 사람들은 어리석고 더럽고 야만적입니다. 학자들과 지식인들을 싫어해서 이들이 조금이라도 튀면 감금하고 고문하고 처형하지요. 주인공은 돈 루마타라는 이 세계의 귀족으로 행세하고 있는 지구인 과학자로, 몇몇 사람들에겐 신 취급을 받고 몇몇 사람들에겐 경멸의 대상입니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우주여행 이야기인 척 하는 시간여행 이야기인 셈입니다. 작가들이 이 이야기의 설정을 얼마나 말이 된다고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어요.

원작인 [신이 되기는 어려워]은 정말 온갖 액션과 고민으로 가득 찬 소설입니다. 주인공도 바쁘기 그지 없고요. 하지만 알렉세이 게르만이 감독한 이 영화에서는 원작의 분주함과 진지한 고뇌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아니, 이야기를 따라가기도 힘들어요. 공감할 캐릭터도, 몰입하며 따라갈 사건도 없습니다. 원작소설의 팬들이 좋아했을 모든 것들을 잘라내버렸어요.

대신 영화는 일종의 가상현실과 같은 체험을 제공합니다. 영화의 대부분은 핸드헬드 카메라로 찍은 롱테이크입니다. 카메라는 주인공과 아주 가까운 곳에 있고 종종 그보다 더 가까운 곳을 엑스트라가 지나갑니다. 심지어 그 중 몇 명은 카메라와 눈을 맞추기도 하고요. 거의 종군기자의 시점에서 보는 것 같습니다. 주인공은 술에 쩔어 있거나 잠에 취해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냥 짜증나고 화가 나 있는 상태인데, 그도 이해가 되는 것이 끝도 없이 비가 내리고 사방이 진흙탕이고 사방에 죽은 사람과 동물들의 시체가 널려 있는 곳에서 긍정적이 되기는 힘들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3시간이 가까운 러닝타임 동안 이 불편함을 극대화시킵니다. 흑백으로 찍어 준 게 그나마 고맙다고 느껴질 정도죠.

나쁘다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반대로 굉장히 잘 만든, 인상적인 영화예요. 단지 이 영화를 보는 체험은 즐거움과는 좀 거리가 있습니다. 3시간 동안 버티다 "와, 드디어 이 영화를 이겨냈어!"라는 해방감이 드는 그런 종류의 영화죠. 타르코프스키와 헤르조크의 가장 견디기 힘든 부분만 골라서 묶은 것 같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도전해보시고 싶으신 분들은 손들어보세요. (17/01/04)

★★★☆

기타등등
어찌된 게 제가 본 스트루가츠키 형제 소설의 각색물들은 모두 극단적으로 아트아트한 영화들이었습니다. 이들 중 가장 재미있고 대중적인 영화가 타르코프스키의 [스토커]였으니 말 다 했죠.


감독: Aleksey German, 배우: Leonid Yarmolnik, Aleksandr Chutko, Yuriy Tsurilo, Evgeniy Gerchakov, Valentin Golubenko, Leonid Timtsunik, Natalya Moteva, Nikita Strukov, 다른 제목: Hard to Be a God

IMDb http://www.imdb.com/title/tt2328813/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69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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