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드레와 마리어는 같은 직장에서 일합니다. 엔드레는 재무담당 이사이고 마리어는 들어온 지 얼마되지 않은 품질관리담당자입니다. 둘이 일하는 곳은 도축장입니다. 매일 수많은 소들이 들어와 시체가 되고 고기와 뼈와 가죽으로 분리되지요. 이 모든 과정이 꼼꼼하게 그려지니까 보기 싫으신 분들은 참고하세요. 요새 아트하우스 영화 관객들에겐 익숙해진 풍경입니다만.

두 사람은 같은 꿈을 꿉니다. 눈 덮인 숲 속을 돌아다니는 사슴이 된 꿈을요. 정확하게 말하면 같은 꿈을 꾸는 게 아니라 같은 꿈 속에 있는 두 마리의 사슴 중 한 마리가 되는 거죠. 엔드리는 수컷 사슴, 마리어는 암컷 사슴. 모를 수도 있었어요. 하지만 회사의 약품함이 털리는 절도 사건이 일어나 심리학자가 개입하면서 두 사람은 서로의 꿈에 대해 알게 됩니다.

당연히 이는 로맨스의 시작입니다. 하지만 일디코 예네디의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는 이 진부하다면 진부하고 가슴 떨린다면 가슴 떨린다고 할 수 있는 판타지 설정을 최대한 억제합니다. 로맨틱한 배경 음악이 깔리지도 않고 (후반에 특정 노래가 중요하게 쓰이긴 하지만) 주인공들은 자기네들을 연결하는 초자연현상에 대해 알게 된 뒤에도 여전히 무덤덤해보여요. 둘은 사랑에 빠졌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평범한 판타지 로맨스의 장르의 관습은 거의 나오지 않는 거죠. 그리고 수많은 소들을 과학적이고 효율적으로 죽이는 그들의 일상은 계속됩니다.

로맨스의 발전이 느린 이유는 캐릭터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엔드레는 늙고 지친 왕년의 플레이보이예요. 과거엔 여러 여자들을 만나고 다닌 모양이지만 지금은 거의 금욕적인 독신 생활을 하고 있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한쪽 팔을 쓰지 못한 지 꽤 된 모양이고요. 거의 딸 또래라고 할 수 있는 마리어는 암만 봐도 자폐 스펙트럼 어딘가에 있는 것 같습니다. 일은 정확하게 잘 하고 놀라운 기억력의 소유자이지만 사회생활에 서툴고 연애를 해본 적도 없어요. 편안하게 연애를 할 수 있는 입장도, 성격도 아닌 거죠.

영화는 이들의 관계를 억지로 밀어붙이지 않고 담담하게 관찰합니다. 그러면서 이들 관계에서 아주 작은 소리로 울리는 미묘한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찾아내죠. 여기서 키를 쥐고 있는 캐릭터는 마리어입니다. 엔드레야 경험이 풍부한 늙은이이니 연애 자체엔 익숙하죠. 하지만 마리어에겐 모든 게 낯설고 이 모든 것들은 과학적으로 연구되어야 할 대상입니다. 막판에 상황이 극단적으로 흐를 때도 마리어는 담담하기 짝이 없어요.

이야기 속의 초자연현상은 우리가 아는 세상 너머에 우리의 삶을 결정짓는 또다른 힘이 있다는 사실을 암시합니다. 보통 그건 우리를 자상하게 들여다보는 지적 존재, 그러니까 신이나 천사로 연결되지요. 하지만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의 초자연현상은 우리가 아는 세계와 특별히 다를 것 없는 또다른 자연현상의 결과인 것처럼 보입니다. 반드시 따라야 하는 운명도 아니며 아무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죠. 영화는 여기에 대해 아무 것도 말해주지 않아요. 이 모든 건 그냥 눈 덮인 차가운 겨울 숲처럼 차갑고 냉정한 환경일 뿐입니다. 물론 그 숲은 아름답죠. 그 안을 떠도는 두 마리의 사슴처럼. (17/12/03)

★★★☆

기타등등
두 주연배우 모두 연기 경험이 없다더군요. 마리어 역의 배우는 신인이고 엔드레 역의 배우는 아마추어인데 이후에도 연기를 계속할 계획은 없다고요. 두 마리의 사슴 중 암컷은 연기 경험이 있는 베테랑인데 수컷은 아마추어.


감독:Ildikó Enyedi, 배우: Alexandra Borbély, Géza Morcsányi, Zoltán Schneider, Ervin Nagy, Tamás Jordán, Zsuzsa Járó, Réka Tenki, 다른 제목: On Body and Soul

IMDb http://www.imdb.com/title/tt5607714/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59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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