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풀 라이프 Wonderful Life (1998)

2017.12.27 22:04

DJUNA 조회 수:6902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초기작 [원더풀 라이프]가 개봉됩니다. 1998년 영화니 거의 20년전 영화네요. 전 옛날 옛적에 이 영화를 보고 까맣게 잊고 있다가 간신히 기억나는 설정만 갖고 영화를 찾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고레에다 히로카즈라는 이름이 별 의미가 없었고,

도입부는 평범해 보입니다. 낡은 학교 건물 같은 곳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이 전에 처리한 상담인인 것 같은 할아버지에 대한 잡담을 하면서 들어오죠. 하지만 그 낡은 건물은 사실 죽은 사람들이 천당으로 가기 전에 일주일 동안 머무는 중간역으로, 여기서 그들은 사흘 동안 가장 간직하고 싶은 과거의 행복한 추억을 고른 뒤 남은 사흘 동안 그 장면을 재현한 영화로 만듭니다. 그리고 그 추억만 갖고 천당으로 가죠.

이 아이디어는 척 봐도 방송국에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만든 경험이 있는 사람의 두뇌에서 나온 것입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늦은 밤 편집실에서 작업을 하다가 이 영화의 이야기를 생각했다는군요. 깊이 생각해보면 어처구니 없는 설정인데도 영화가 정교한 사실성을 갖고 있는 건 유사한 일에 종사한 사람들의 지식과 경험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겠죠.

영화는 많이 다큐멘터리스럽습니다. 수많은 장면들이 인터뷰를 담은 다큐멘터리처럼 찍혔고 그 인터뷰를 한 사람들 중 상당수는 실제로 자기 이야기를 하는 일반인입니다. 이들의 기억을 재구성하는 영화 촬영 장면도 영화 메이킹 필름 같죠. 중간역의 공무원들은 전혀 판타지스러운 구석이 없습니다. 그냥 시골구석에 박혀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에요.

어처구니없는 아이디어라고 했지만 (실제로 여기서 일하는 공무원 중 한 명이 "이게 무슨 소용일까?"라고 묻기도 합니다) 사실 아주 효과적이기도 합니다. 영화를 보면서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나 같으면 어떤 기억을 고를까?"하고 자문하게 되니까요. 자연스럽게 관객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영화입니다. 그 때문에 이 영화 속 인물들의 선택이 보다 개인적인 의미를 담고 깊이 다가오게 되지요.

영화 후반에 이르면 이 공무원들의 과거가 밝혀지고 이들 중 한 명은 이 주에 들어온 죽은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음이 밝혀집니다. 드라마가 강해지는 부분인데, 할리우드라면 감정 과잉으로 몰고갔을 이 부분에서도 영화는 일본식으로 담담하기 짝이 없습니다. 네, 참 일본스러운 영화예요. 초자연적인 상황을 담담하게 그리면서 적절하게 감상적인 애수를 담는. 하지만 영화는 감상주의를 최대한 절제하고 있고 관객들에게 던지는 질문을 가볍게 여기지 않으며 죽음과 삶이라는 묵직한 주제에 대해 진지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진지함은 영화가 끝날 무렵 그에 어울리는 결과물을 얻습니다. (17/12/27)

★★★☆

기타등등
중간에 관동대지진과 우물에 독을 푼다고 모함을 받았던 조선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방심했다가 오싹해졌지요.


감독: Hirokazu Kore-eda, 배우: Arata Iura, Erika Oda, Susumu Terajima, 다른 제목: After Life

IMDb http://www.imdb.com/title/tt0165078/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27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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