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빗 로어리의 [미스터 스마일]을 보고 왔어요. 머나먼 압구정까지 가서. 여전히 여기 저기에서 하고 있긴 한데, 시간대가 안 맞더라고요. 전 차가 없어서 심야 영화는 보기 힘들고, 아침에는 잘 못 일어나고. 대안이 없었습니다.

로버트 레드포드가 은퇴작이라고 선언한 영화예요. 앞일은 모르는 거죠. 하지만 배우 나이가 벌써 여든이 넘었고 연기 이외에도 할 일이 많은 사람이니 마지막 영화가 된다고 해도 이상할 일은 없어요. 그리고 이 영화는 로버트 레드포드의 은퇴작으로 보았을 때 가장 감흥이 큽니다. 그렇게 짜여진 작품이에요.

포레스트 터커라는 실존인물이 주인공인 영화입니다. 이 사람은 은행강도인데요. 어린 시절부터 범죄로 먹고 살았고 실패하거나 성공한 수많은 탈옥 시도로 유명합니다. 위키에서 보니까 18번 성공적으로 탈옥했고 12번은 실패했다고 해요. 1981년을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에서는 16번의 성공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 뒤에도 두 번을 더 했을까요? 모르겠고요.

은행강도라는 직업은 어쩔 수 없이 폭력적일 수밖에 없죠. 총 들고 사람 협박해서 돈을 빼앗는 게 폭력이 아니면 뭐겠어요. 하지만 영화는 최대한 폭력적인 분위기를 넣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건 포레스트 터커도 마찬가지예요. 은행강도질이라는 폭력으로 먹고 살면서, 그는 최대한 이 일을 비폭력적으로, 신사답게 처리하려고 합니다. 자기가 가장 잘 하고 그 일을 해서 가장 행복하고 자신이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직업이 은행강도라서 열심히 하지만 그래도 사람들을 다치게 할 생각은 없는 거죠. 육체적으로도 그렇고 정신적으로도 그렇고.

정말 로버트 레드포드가 딱이예요. 실제 터커가 어떤 사람이건 이 캐릭터는 자동적으로 호감이 가고 카리스마 넘치는 인물이어야 하거든요. 반 세기 넘는 세월 동안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하면서 전세계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온 나이 먹은 스타에 맞추어진 역할이죠. 게다가 터커의 이미지는 레드포드의 전작과 많이 겹쳐요. 그는 지금까지 탈옥범도 연기했고 사기꾼도 연기했고 은행강도도 연기했지요. 과거의 캐릭터들을 불러와 팬들에게 작별인사를 한다는 느낌이 들어요.

굉장히 강한 향수에 의해 지배되는 영화입니다. 슈퍼 32밀리로 찍은 80년대 냄새 풀풀 나는 화면, 레드포드와 커플로 나오는 시시 스페이식의 등장, 아스란히 스며나오는 옛 영화들의 기억. 심지어 은행강도라는 직업까지. 이 직업이 앞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요? 버틴다고 해도 포레스트 터커가 거의 종교적 예식처럼 진행하던 그런 범죄와는 다른 모양이겠죠. (19/01/21)

★★★

기타등등
영화 속 목격자들은 터커가 50대에서 60대 사이 정도로 보인다고 했는데, 레드포드가 지금 정정하긴 하지만 그 나이로 보이지는 않잖아요. 물론 당시 터커는 60대 초반이긴 했습니다. 1920년생이니까요.


감독: David Lowery, 배우: Robert Redford, Sissy Spacek, Casey Affleck, Danny Glover, Tom Waits, Tika Sumpter 다른 제목:

IMDb https://www.imdb.com/title/tt2837574/
Naver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70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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