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 Carrie (1976)

2020.07.03 22:24

DJUNA 조회 수:4620


브라이언 드 팔마의 [캐리]를 보고 왔습니다. 이미 블루레이로 갖고 있는 영화인데 굳이 영화관에서 볼 필요가 있는가? 일단 집중이 더 잘 되겠지요. 그리고 상관 없이 영화관에서 한 번 보고 싶었습니다. 아무리 텔레비전 성능이 좋더라도 영화관의 경험은 한 번씩 거치는 게 좋으니까요. [캐리]를 극장에서 볼 수 있는 기회가 앞으로 얼마나 더 있겠어요.

유명한 이야기지요. 기독교 광신도 엄마와 함께 사는 캐리 화이트라는 고등학생이 샤워 중에 첫 생리를 경험하고 그 때 자신에게 초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캐리는 샤워실에서 놀림감이 되고 이에 죄책감을 느낀 같은 학교 학생 수는 남자친구인 토미에게 캐리의 파트너가 되어 무도회에 나가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리고 캐리를 싫어하는 크리스는 캐리를 놀려먹을 음모를 꾸미죠. 그 음모의 정체는 스포일러가 아닙니다. 포스터가 폭로하고 있거든요. 그 뒤에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지도 예측하기 어렵지 않고요.

스티븐 킹의 소설이 원작입니다. 당시엔 그게 그렇게까지 큰 의미가 있는 정보가 아니었어요. [캐리]는 킹의 첫 장편소설이었으니까요. 역시 신인이었지만 그래도 전작으로 인정을 받은 감독 브라이언 드 팔마의 이름값이 당시엔 조금 더 나갔습니다. 하지만 드 팔마의 이름 값도 영화의 히트에 엄청난 도움이 되지는 않았을 거예요. 캐리 화이트의 이야기는 두 사람의 이름값 도움 없이 스스로 미국 대중 문화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정말 원초적인 이야기였어요. 어딘가 망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사람들 앞에서 돼지피를 뒤집어 쓴 여자아이의 치와 분노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을 테니까요. 게다가 그 과정은 얼마나 그럴싸하게 신데렐라 이야기인가요. 제가 아는 '주었다 빼앗는 이야기' 중 최악입니다. 악랄하다는 말이 절로 나와요. 캐리의 이야기는 정말로 잘 풀릴 수 있었습니다. 주변엔 정말로 캐리에게 관심을 갖고 있고 친절한 사람들이 있었고 그 과정은 선의에 바탕을 두고 있었어요. 캐리 스스로도 엄마가 쌓은 광신의 감옥에서 스스로 벗어나려고 하고 있었고요. 다들 잘 맞아 떨어지고 있었는데, 정말로 사악하고 얄팍한 사람들이 이 과정을 망쳐버렸지요. 드 팔마는 시간을 엿가락처럼 늘리며 이 악랄한 장난의 과정을 정말로 서스펜스 넘치게 그리기 때문에 전 볼 때마다 이번에는 어떻게 막을 수 있을 거 같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물론 그럴 리가 없고 결국 돼지피는 쏟아지지요.

시대의 산물입니다. 그리고 브라이언 드 팔마가 가장 자연스럽게 브라이언 드 팔마일 수 있었던 시절의 작품이지요. 1980년대, 1990년대로 넘어가면 드 팔마의 테크닉은 현란하기 짝이 없어도 은근히 시대착오적이라는 인상을 줍니다. 하지만 [캐리]엔 그런 느낌이 없습니다. 텔레키네시스라는 소재, 직설적인 정신분석과 같은 재료들도 이 영화에서는 그냥 당연합니다.

두 차례 리메이크되었고 속편이 하나 나왔으며 한 번은 뮤지컬로 만들어졌습니다. 이럴 필요가 있었을까요? 드 팔마의 영화는 누가 봐도 결정판이고, 아무리 좋은 배우라도 캐리를 연기한 시시 스페이식의 그 연민과 공포를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그 절실함을 재현할 수 없겠지요. 그러나 우린 그래도 계속 캐리에게 기회를 주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그 결말이 늘 파국으로 끝난다고 해도. (20/07/03)

★★★☆

기타등등
버나드 허먼이 음악을 맡을 수도 있었던 영화였습니다. 세상을 뜨지 않았다면요. 영화에 [싸이코] 음악의 노골적인 패러디가 나오는데, 허먼이 맡았다면 나오지 않았겠지요.


감독: Brian De Palma, 배우: Sissy Spacek, Piper Laurie, Amy Irving, William Katt, John Travolta, Nancy Allen, Betty Buckley, P.J. Soles, Priscilla Pointer

IMDb https://www.imdb.com/title/tt0074285/
Naver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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