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추 (2011)

2011.02.14 23:17

DJUNA 조회 수:21687


애나는 남편을 죽인 죄로 7년 동안 복역 중입니다. 어머니가 죽자 모범수인 애나는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3일간의 휴가를 허락받고 시애틀로 가는 버스에 탑니다. 그리고 거기서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는 한국인 청년 훈을 만나지요. 


시애틀로 무대가 옮겨지고 여자주인공이 중국계 미국인으로 바뀌었지만, [만추]의 기본 이야기는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사실 프린트가 오래 전에 사라진 이만희의 영화가 계속 리메이크 될 수 있었던 것도 다 이 설정의 힘 때문이죠. 너무나 명쾌하기 때문에 다른 길로 빠질 수가 없어 보이는 겁니다.  그 때문에 이 안전성을 역이용한 [육체의 약속]처럼 괴상한 영화도 나올 수도 있었던 거겠죠.


김태용 역시 원작을 일종의 안전망처럼 이용하고 있습니다. 김기영처럼 막 나간다는 뜻은 아니에요. 대신 즉흥적입니다. 각본 작업 중 그렇게 꼼꼼한 계산을 한 것 같지 않아요. 그 때문에 흐름이 부드럽지 못하고 질적으로도 오락가락합니다. 그 중엔 마지막 시퀀스처럼 울림이 큰 멜로드라마도 있고, 장례식 소동처럼 신경질적인 코미디도 있으며, 유원지 장면처럼 과욕이 지나쳐서 손발이 오그라드는 부분도 있지요. 이 덜컹거리는 엇갈림은 묘한 재미를 주지만 어느 정도까지 의도적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이 영화의 무게 중심은 애나 역의 탕 웨이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이 배우가 처음부터 끝까지 안정적인 존재감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영화가 하나로 묶여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죠. 탕 웨이는 말 그대로 무비스타입니다. 별다른 연기를 하지 않아도 화면이 꽉 찬다는 느낌이 들고, 어느 언어로 이야기해도 자연스럽고 풍부한 감정이 흘러나오죠. 물론 김태용은 배우의 가능성을 최대한으로 뽑고 싶을 때는 중국어 연기를 허락하고 있지만요.


애나의 상대역 훈을 연기한 현빈은 보통 때보다 조금 어리고 가난하고 초라해보입니다. 타지를 떠도는 어린 제비 역할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그런 이미지는 자연스럽죠. 탕 웨이와 호흡도 잘 맞는 편이고요. 하지만 현빈은 자신의 역할과 영어라는 언어, 미국이라는 나라가 조금씩 어색한 것 같고, 그게 연기에도 묻어납니다. 캐릭터와 언어를 배우에게 조금 더 맞추었다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김태용의 [만추]는 전체적인 흐름보다는 부분부분을 따로 감상하는 것이 더 좋은 영화입니다. 종종 영화의 재미가 의도와 상관없이 스스로 만들어진다는 느낌도 들어요. 하지만 영화 내내 탕 웨이의 멋진 연기를 볼 수 있고, 갈색조로 촉촉하게 물든 시애틀의 가을(사실은 겨울이지만)은 아름답습니다. 이 두 가지의 덩어리만 챙겨도 영화 하나를 지탱하고 남음이 있습니다(11/02/14)


★★★


기타등등

전 여자주인공이 남자들에게 관습적인 존댓말을 쓰는 게 싫습니다. 특히 번역 자막에서 이런 경우가 많은데, [만추]에서도 그런 대사들이 자꾸 나와요. 존댓말이 없는 언어에 억지로 우리식 상하관계의 선입견을 맞추다보니 그렇게 되는 거죠. 다행히도 애나와 훈의 대사는 이 경우가 아닙니다만, 다른 자잘한 경우들이 자꾸 눈에 밟혀서...


감독: 김태용, 출연: Wei Tang, 현빈, James C. Burns, John Wu, Danni Lang, 김준성, Ma Yong, Katarina Choi, 김서라, 다른 제목: Late Autumn


IMDb http://www.imdb.com/title/tt1542482/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7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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