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버 렛 미 고 Never Let Me Go (2010)

2011.03.24 21:26

DJUNA 조회 수:13713


마크 로마넥의 [네버 렛 미 고]는 [남아있는 나날들]의 저자 가즈오 이시구로의 다소 수상쩍지만 아름다운 SF 소설이 원작입니다. 여기서 제가 '수상쩍다'라고 말하는 건, 이 소설이 자기 직업에 자부심이 있는 전문 SF 작가라면 가볍게 무시할 만한 설정을 진지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지요. 장르물로는 지적할 부분이 그득하지만 그래도 서정성과 비극성이 넘치는 아름다운 작품이라 이 말입니다. 전 좋아합니다.


영화가 테마로 삼고 있는 건 클로닝입니다. 얼마 전에 나왔던 마이클 베이의 블록버스터 [아일랜드]와 비슷한 설정이에요. 20세기 중반에 인간 클로닝에 성공한 대체 우주가 무대인데, 이 세계에서는 인간 클론을 고아원 같은 곳에서 키워 어른이 되면 장기를 수확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세 번이나 네 번의 수술을 거치면 그들은 결국 죽죠. 영화 초반의 무대가 되는 헤일셤은 그 중 조금 진보적인 곳으로 클론 아이들을 보다 인간적으로 대해줍니다. 그래봤자 끝은 같지만. 식육용 닭들을 닭장에서 키우느냐, 농장에서 키우느냐의 차이랄까요. 


영화는 헤일셤 출신 아이들 셋의 이야기를 따라갑니다. 토미, 루스, 캐시. 이들의 이야기는 영국 기숙학교 이야기의 전통을 밟습니다. 고풍스럽고 일상의 현실로부터 격리되어 있는 예스러운 기숙학교에 사는 어리고 섬세한 아이들이 삼각관계 속에서 사랑하고 아파하고 그래요. 그러는 동안 아이들은 자신에게 닥친 운명에 대해 알게 되고 고통스러워하고 어설프게나마 삶을 연장할 수 있는 길을 찾으려 하지만 결국 좌절하게 됩니다. 


[네버 렛 미 고]에서 가장 아픈 부분은 주인공들의 수동성입니다. 클론 세계의 스파르타쿠스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인데도 이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부당한 운명과 맞서 싸울 생각이 없어요. 그냥 안 되는 겁니다. 그들이 속해 있는 세계는 그런 적극성을 가르쳐주지 않았어요. 그들에게 남은 건 고통과 공포를 견뎌내면서 그들에게 주어진 작은 영역 안에서 인간다운 경험을 하면서 자신이 영혼을 가진 인간임을 느끼는 것뿐입니다.  


원작과 비교한다면 알렉스 갈란드가 각색한 영화의 각본은 단순명쾌합니다. 종종 지나치게 모범적인 줄거리 요약판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단지 드라마만 축소시킨 게 아니라 이야기를 다듬어 알기 쉽게 만들고 주제 역시 잘 보이게 밖으로 끄집어 냈지요. 원작의 은밀한 서정성을 기대하고 오신 분들은 실망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홍보과정을 통해 드러날 수밖에 없는 정보라고 해도, 전 오프닝부터 스포일러를 깔아버리는 진행방식이 맘에 들지 않아요.


그러나 이게 그렇게 큰 단점인지는 모르겠어요. 장르 팬의 눈으로 보면 원작 역시 지독하게 나이브한 작품이거든요. 그리고 이 나이브함이 소설의 독특한 매력이기도 하고요. 원작과 비교하면 지나치게 명쾌하고 단순할 수 있지만, 로마넥의 명쾌함은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 단순함 속에 흐르는 우울한 시적 감성은 가즈오 이시구로의 것과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고 해도 충분히 좋아요. 끝까지 일대일로 원작과 영화를 비교할 생각이 아니라면요. 예를 들어 전 소설의 마지막 챕터를 정말 좋아하지만, 보다 단호한 선언이었던 영화의 엔딩은 소설과는 다른 힘을 갖고 있죠. (11/03/24)


★★★☆


기타등등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앞으로 닥칠 복제인간들의 인권에 대해 걱정하고 있지만 그들의 미래가 [네버 렛 미 고]에서 그리는 것과 같은 세계가 될 가능성은 없죠. 적어도 보편적인 선에서 우리의 상식과 법이 이를 막을 수 있습니다. 종종 사람들은 그들이 이미 가지고 있는 걸 너무 과소평가해요.


감독: Mark Romanek, 주연: Carey Mulligan, Andrew Garfield, Keira Knightley, Charlotte Rampling, Sally Hawkins, Nathalie Richard, Izzy Meikle-Small, Charlie Rowe, Ella Purnell


IMDb http://www.imdb.com/title/tt1334260/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720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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