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어라 검풍아 (2021)

2021.04.08 22:44

DJUNA 조회 수:2166


조바른의 [불어라 검풍아]를 보고 왔습니다. 감독의 전작인 [갱]은 얼마 전에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화제를 모은 작품인데, 고등학교에서 짱먹으려는 남자아이들이라는 소재가 좀 숨막혀서 전 아직 못 봤어요. 이 영화는 원래 [슬레이트]라는 제목으로 촬영되었고 해외 영화제에서도 그 제목으로 소개되었는데, 개봉 직전에 제목을 바꾼 것 같습니다.

영화의 주인공 연희는 오로지 주인공만 되고 싶어하는 액션 전문 무명 배우입니다. 어쩔 수 없이 손목이 부러진 주연배우의 대역을 하려고 세트장을 찾는데, 그만 마법에 걸린 슬레이트 때문에 평행세계로 빠져 버립니다. 그곳은 모두가 칼을 차고 다니며 툭하면 칼싸움이 벌어지는 곳이에요. 연희는 그곳이 촬영장이라고 착각하고, 마을 영주인 지나는 그런 연희가 마을을 구하러 온 전설의 귀검이라고 믿어버립니다. 사정을 알아차린 연희는 소품 칼로 마을을 지키는 싸움에 참여하는데, 그만 진짜 귀검이 나타납니다.

영화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언급하지만 무협 버전 [오즈의 마법사]에 더 가깝습니다. 다음 유사점을 보세요. 주인공은 현실세계에서 낯선 환상세계로 떨어집니다. 현실세계는 흑백/비스타 비율이고 환상세계는 컬러/와이드스크린입니다. 주인공은 그곳 사람들을 구할 구원자로 오인받고 최종 보스를 처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세계에서는 이미 현실 세계에서 온 사람이 한 명 더 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는 주인공을 제외한 대부분 배우들이 현실세계와 환상세계에서 일인이역을 합니다.

교훈담입니다. 무명배우의 아버지가 자기를 고아원에 버리고 간 뒤로 연희는 오로지 주인공만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평행세계에서 귀검의 역할을 하게 된 것도 주인공에 대한 집착 때문이고요. 하지만 오로지 강자만이 살아남을 자격이 있다고 믿는 악당들과 싸우면서 자신의 역할과 세상에 대해 보다 입체적인 관점을 갖게 됩니다. 성장하는 것이지요.

주연배우 안지혜를 포함한 모든 배우들이 액션 대부분을 직접 소화합니다. 주연배우의 얼굴이 대부분 드러나고 액션이 끊기기 않습니다. 와이드스크린의 활용, 영화의 액션을 처리하는 방법은 1960년대 액션 영화의 분위기를 풍깁니다. 이야기는 전통적이고 진행속도는 느긋한 편인데, 지루하지는 않습니다. 군더더기 없이 할 이야기만 깔끔하게 하고 주제와 내용도 명쾌한 날씬한 영화예요.

각본은 연희의 성에 그렇게까지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습니다. 야심찬 무명 액션 배우라는 것이 여성이라는 것보다 더 중요하지요. 로맨스도 없고요. 지나의 역할도 영주라는 것이 여자라는 것보다 더 중요합니다. 하지만 두 여자배우가 화면에 등장하면 캐릭터의 무성성이 깨질 수밖에 없지요. 보면서 끊임없이 여분의 의미를 읽게 됩니다. 가끔 다른 남자 캐릭터가 주인공의 뷴량을 까먹을지 모른다는 걱정 역시 가끔은 들고. 특히 진짜 귀검이 나타났을 때는요. (21/04/08)

★★★

기타등등
1. 중간에 와이드스크린으로 넓어지는 영화라는 건 마스킹을 안 한 비스타 관에선 앞부분과 뒷부분 화면 사방에 블랙바가 뜬다는 말이죠.

2. 세트장이 인상적인데, 구리시의 고구려 대장간 마을이라고 합니다.


감독: 조바른, 배우: 안지혜, 이민지, 박태산, 조선기, 이세호, 다른 제목: Slate

IMDb https://www.imdb.com/title/tt13576808/
Naver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98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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