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어 수업 Persian Lessons (2020)

2022.12.31 23:09

DJUNA 조회 수:2078


[페르시아어 수업]은 전형적인 '유대인 이야기'를 하고 있는 영화입니다. 탄압받는 유대인 주인공이 잔머리와 예상치 못한 도움으로 역경에서 살아남는다는 거죠. 구약시절부터 끝도 없이 되풀이 되었던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의 유대인 주인공 이름은 쥘입니다. 운이 나빠서 스위스 국경을 넘으려다 체포되었는데, 그만 어쩌다가 구한 페르시아어 책 덕택에 페르시아 사람 흉내를 내다 살아남습니다. 운 좋게도 코흐라는 독일 장교가 페르시아어를 하는 사람을 찾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쥘은 페르시아어를 아버지를 뜻하는 '바바' 하나밖에 모르기 때문에, 코흐를 가르치기 위해 언어 전체를 창조해 내야 합니다.

볼프강 콜하세라는 동독 시나리오 작가의 단편 [언어의 창조]가 원작이라고 합니다. 콜하세의 작품 중 제가 아는 건 [리타의 전설] 뿐인데, 아마 동독 시절 작품들이 더 중요하겠지요. 정작 영화는 러시아와 벨라루스 합작이고, 감독인 바딤 페렐리만은 우크라이나 출신입니다. 페렐리만은 이 영화의 각본을 러시아어로 썼다 영어로 번역한 뒤 다시 독일어로 번역했다고 하더군요. 이 영화와 은근히 어울립니다.

언어학자들이 무지 좋아할 법한 영화입니다. 말 그대로 언어 하나가 통째로 태어나는 과정을 보여줘요. 즉석으로 만들어진 단어들이 모이고 그 모인 단어들이 문법을 이루고... 심지어 엉터리로 이 언어를 만든 쥘마저도 그 언어의 연못 안에 쓸려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연못 안에서 코흐와 교감을 하게 되지요. 코흐는 정말 잘 만든 캐릭터로, 이런 사기행위에 빠질만한 어리숙함과 그런 언어를 익히는 성실함을 모두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영화는 코흐에게 쓸데없이 관대해지는 실수는 하지 않지만 그래도 끝에 가면 어느 정도 연민까지 가능한 입체적인 인물로 남습니다.

많은 유대인 이야기가 그렇듯, 영화는 결국 기억에 대한 이야기로 끝이 납니다. 과연 영화의 결말이 가능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과거를 기억하고 그것을 우리의 일부로 간직해야 한다는 교훈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일부러 망각을 강요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지금 한국 사회에서 이 교훈은 더 처절하고 절실해 보입니다. (22/12/31)

★★★☆

기타등등
주인공 쥘은 영화 내내 레자 준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데, 레자는 페르시아어 이름이 맞지만 준은 영어의 'dear'에 해당되는 단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레자 준은 '레자에게'라는 뜻입니다.


감독: Vadim Perelman, 배우: Nahuel Pérez Biscayart, Lars Eidinger, Jonas Nay, David Schütter, Alexander Beyer, Andreas Hofer, Leonie Benesch, Giuseppe Schillaci 다른 제목: Persischstunden,

IMDb https://www.imdb.com/title/tt9738784/
Naver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aver?code=192119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