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트리스 Tetris (2023)

2023.04.13 01:12

DJUNA 조회 수:2384


20세기 배경의 사업계 사정을 두 편의 영화가 거의 동시에 나왔지요. 하나는 벤 애플렉이 오래간만에 감독한 [에어]이고 다른 하나는 스코틀랜드 감독 존 S. 바이어드가 감독한 [테트리스]예요. 두 편을 같은 날 봤는데 전 [에어]보다는 [테트리스] 쪽을 더 재미있게 봤습니다. 일단 취향의 문제도 있겠죠. 전 80년대를 정통으로 관통한 세대에 속해있지만 농구에도, 운동화에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테트리스는 해봤고 지금도 하고 있으며, 냉전시대의 종말과 구소련의 붕괴는 와 닿는 이야기거든요. 그리고 객관적으로 [테트리스] 쪽이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에어]는 사실 결말이 다 보이는 이야기잖아요. 그리고 전 에어 조던을 갖고 할 수 있는 더 중요한 이야기가 따로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이건 한국 노동역사의 일부이기도 하잖아요.

[테트리스]의 주인공은 헹크 로저스라는, 일본에 사는 인도네시아 피가 섞인 네덜란드인 사업가 겸 비디오 게임 디자이너입니다. 영화 내용의 대부분은 로저스가 테트리스의 라이센스를 얻기 위해 벌인 모험을 다루고 있습니다. 당연히 소련에 가야 하지요. 그리고 붕괴 직전의 소련 사람들이 로저스 같은 장삿꾼을 좋게 볼 리가 없습니다. 게다가 처음부터 계약을 엉망으로 맺어서 그 틈을 이용해 라이센스를 노리는 다른 사람들과도 맞서야 해요. 이 영화에서 가장 악당처럼 나오는 사람은 미러소프트의 로버트 맥스웰입니다. 그리고 정말 그렇게 다루기 쉬운 사람이기도 해요.

영화가 가장 가까운 장르는 냉전시대 스파이물입니다. 내용도 그렇지만 분위기도 그래요. 그리고 80년대 할리우드 영화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 영화에서는 언어 사실성이 지켜지고 있고 러시아인 캐릭터들은 대부분 (고르바초프 역의 매튜 마시는 아닙니다) 러시아인 배우가 연기하고 있다는 것이겠지요. 하여간 영화는 이런 장르를 채울 수 있는 긴장감 넘치는 에피소드들과 복잡성을 모두 갖추고 있어서 러닝타임 내내 바쁩니다. 물론 재미를 위해 지어낸 이야기도 있고 이건 쉽게 구별해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정도는 허용되는 영화예요. 그렇게까지 진지한 작품은 아닙니다. 심지어 대놓고 8비트 게임 이미지를 액션 장면에 투영하기도 하니까요.

영화의 구심점은 역시 게임에 대한 애정이겠지요. 그리고 이 애정은 헹크 로저스와 테트리스의 창조자인 알렉세이 파지트노프를 하나로 묶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헹크 로저스는 그냥 여러 사업가 중 한 명이 아닌, 테트리스 라이센스를 쟁취할 자격이 있는 정당한 인물로 태어나게 되지요. 이 관계가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있고 두 사람이 여전히 친구이며 비즈니스 파트너라는 사실은 이 가볍고 발랄하며 종종 허풍을 떠는 영화에 진실성을 부여합니다.

[에어]의 맷 데이먼처럼 대놓고 오스카를 노리지는 않지만, 태론 에저튼은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신나고 유쾌한 캐릭터를 연기합니다. 신경 쓰이는 것은 로저스의 아시아계 혈통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런 혈통을 가진 배우를 꼼꼼하게 캐스팅하기는 조금 어려웠을 거 같습니다. (23/04/13)

★★★

기타등등
80년대에서 90년대로 이어지던 시대의 낙천주의가 종종 그리워지긴 합니다. 그 때는 정말 세상이 더 나은 방향으로 가는 줄 알았습니다.


감독: Jon S. Baird, 배우: Taron Egerton, Nikita Efremov, Sofia Lebedeva, Anthony Boyle, Ben Miles, Ken Yamamura, Igor Grabuzov, Oleg Shtefanko, Ayane Nagabuchi, Rick Yune, Roger Allam, Toby Jones, Togo Igawa, Matthew Marsh, Ieva Andrejevaite, Kanon Narumi

IMDb https://www.imdb.com/title/tt12758060/
Daum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68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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