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나 워쇼스키가 키애누 리부스와 캐리-앤 모스가 나오는 [매트릭스]의 속편을 만든다고 했을 때, 모두가 조금씩 어리둥절해 했습니다. [매트릭스]의 이야기는 3부작 안에서 거의 완벽하게 마무리되었고 (속편에 대한 평가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지만요) 두 주인공은 3부 마지막에 장엄한 죽음을 맞았으니까요. 굳이 이걸 다시 시작할 필요가 있을까? 조심스럽게 정보를 감추고 있는 예고편을 봐도 무슨 계획인지 잘 안 보였어요.

영화가 시작되면 키애누 리브스의 캐릭터 토머스 앤더슨은 멀쩡하게 잘 살아있습니다. 단지 앤더슨은 1999년부터 시작된 [매트릭스]라는 히트 비디오 시리즈를 만든 게임 제작자예요. 그 게임의 내용은 우리가 아는 [매트릭스] 영화 시리즈와 똑같기 때문에 이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매트릭스]의 내용을 알고 있고 이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 세계는 여전히 가상현실 세계 안이기 때문에, 그 세계 바깥의 사람들도 모두 그 이야기를 '실제 역사'로 알고 있어요.

영화의 이야기는 [매트릭스] 1편과 거의 같습니다. 주인공 토머스 앤더슨은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가 가상현실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기억을 되찾고 (아, 이건 원작엔 없죠) 가상 현실 세계와 실제 세계를 오가면서 세계를 구합니다. 영화는 심지어 꽤 많은 분량의 오리지널 영화 클립들을 삽입하며 현재 액션과 대비시켜요. 그러니까 초반의 어리둥절함을 넘기면 익숙한 전개가 이어지는 영화입니다. 원작 3부작을 안 본 관객들은 끝까지 어리둥절할 수도 있겠지만요.

이 작품에서 가장 재미있는 건 안티 팬보이스러운 태도입니다. 이런 시리즈의 골수 팬덤에 속한 사람들은 대부분은 이 허구의 세계에 과도할 정도로 진지한 의미를 부여하지요. 하지만 이번 영화는 시작부터 그 닫힌 세계를 열어버립니다. 원작에 대한 진지한 분석은 놀림감이 되고 원작자가 관객들이 보고 있는 속편을 툴툴거리며 만드는 과정 자체가 영화에 농담처럼 등장합니다. 20주년 행사에 와서 팬들에게 시비를 거는 원작자를 보는 기분이에요.

그렇다고 속편으로서 의미가 없나. 그것도 아닙니다. 단지 속편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 자체도 자기 파괴적입니다. 완벽하게 끝난 메시아 이야기를 다시 느긋하게 이어가면서 영화는 꽤 현실적인 후일담을 보여줍니다. 완벽한 승리도, 패배도 없고, 적과 아군의 경계선은 흐릿해졌고, 우린 이 지저분한 세계를 살면서 끝나지 않는 싸움을 하며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물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이어가는 태도는 무척 어른스럽습니다. 심술궂지만 어른스러운 느긋함이 느껴진달까요. 돌아온 네오와 트리니티는 모두 어른스러운 사람이며 어른스럽게 젊은 팬들을 대우하고 무엇보다 어른스러운 사랑을 합니다. 바로 그 때문에 점점 영화는 팬덤 서비스에서 멀어집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런 걸 할 생각이 아니지 않았을까요. (21/12/26)

★★★

기타등등
장르팬이라면 웨스 크레이븐의 [뉴 나이트메어]와 비교해 볼 수 있을 거 같군요.


감독: Lana Wachowski, 배우: Keanu Reeves, Carrie-Anne Moss, Yahya Abdul-Mateen II, Jonathan Groff, Jessica Henwick, Neil Patrick Harris, Jada Pinkett Smith, Priyanka Chopra Jonas, Christina Ricci, Lambert Wilson,

IMDb https://www.imdb.com/title/tt10838180/
Naver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aver?code=191600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