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탈 리콜 Total Recall (2012)

2012.08.08 10:33

DJUNA 조회 수:39108


1990년, 폴 버호벤은 필립 K. 딕의 단편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를 각색한 [토탈 리콜]이라는 SF 영화를 만들었죠. 딕의 소설이 원작이긴 하지만, 댄 오배넌, 로널드 슈셋 기타등등이 참여한 각본은 원작의 아이디어만을 따와 거의 새로 만든 이야기로, 필립 K. 딕의 주제와 소재들로 구성한 거대한 팬질에 가까웠습니다. 하여간 할리우드 SF 장르에 중요한 획을 그은 영화이며, 무엇보다 재미있었죠.

그리고 2012년, 렌 와이즈먼이 이 영화의 리메이크를 내놨습니다. 사람들은 어리둥절했죠. 할리우드 기준으로 22년 정도면 리메이크가 나올만도 합니다. 하지만 숫자를 떠나 버호벤의 영화에 대한 사람들의 기억이 너무 생생합니다. 그리고 과연 [토탈 리콜]을 리메이크해서 무엇하게요? 이미 그 영화는 그 이야기와 주제로 할 수 있는 것은 다 하지 않았습니까?

물론 대안은 있었습니다. 딕의 소설은 단순한 아이디어 덩어리니까, 댄 오배넌, 로널드 슈셋 기타등등이 이전에 낸 아이디어를 무시하고 새로 이야기를 만드는 방법이 있죠. 아마 이것은 [토탈 리콜]의 리메이크를 만드는 가장 상식적인 이유가 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웬걸. 렌 와이즈먼은 그냥 버호벤 영화의 속편을 만들어버렸어요. 여전히 왜 그랬는지 어리둥절합니다.

다른 점이 있긴 합니다. 이 영화에는 더 이상 화성이 등장하지 않아요. 하지만 생화학전으로 인류 대부분이 멸망한 미래의 지구가 등장합니다.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계는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하나는 지배계층이 사는 영국연합이고 다른 하나는 노동자계급이 사는 호주 식민지입니다. 콜로니에 있는 노동자들은 지구 중심을 관통하는 폴이라는 탈것을 타고 매일 영국연합으로 출근합니다...

네, 잘못 읽으신 게 아닙니다. 이 '폴'은 중력열차예요. 지구 중심을 뚫고 지나가는 30층 짜리 엘리베이터입니다. 머리가 빙빙 돌죠. 지구인들에게 이런 걸 만들 능력이 있었다면 이미 그들에게 닥친 문제는 오래 전에 해결하고 남았을 테니까요. 생화학전으로 발생한 오염 물질은 모두 제거해서 지구를 유토피아로 만들었을 거고, 그러고도 여력이 남아 화성으로, 목성으로, 태양계밖으로 날아갔을 겁니다.

그렇다면 정말 중력열차의 아이디어를 써먹고 싶어서 과감하게 기술적 문제를 무시했다? 그러나 그런 걸 고려하면 묘사가 너무 엉망입니다. 특히 중력 묘사가 그렇죠. 이 영화에서는 여행 내내 보통 중력이 있다가 지구 중심에 가까워지면 그 때만 잠시 무중력 상태가 된답니다. 어디선가 렌 와이즈먼의 인터뷰를 읽었는데, 중간에 잠시 무중력 상태가 되니 우주비행 느낌을 줄 수 있어서 이 아이디어를 채택했다나... 아아아아아...

이야기 자체는 첫 번째 영화와 비슷합니다. 화성이 호주로 바뀌었을 뿐이죠. 영국연합의 독재자 코하겐은 호주 식민지에 나쁜 짓을 할 음모를 꾸미고 있고 저항군은 이를 막으려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평범한 노동자인 줄 알았다가 리콜사의 가상 기억 서비스를 받는 중 기억이 되살아난 주인공 더그 퀘이드는 이들 사이에 낀 첩보전의 주인공으로, 영화가 끝날 때까지 자신이 어느 쪽 편인지 확신할 수 없습니다.

전 영화 중간까지는 그럭저럭 재미있게 봤습니다. 원작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재미가 있었고, 케이트 베킨세일의 등장으로 업그레이드된 액션도 볼만 했지요. 주거지 부족으로 빽빽하게 건물들이 들어찬 미래 세계의 디스토피아 묘사도 괜찮았습니다. 그 정도면 속도감도 있었어요. 아놀즈 슈왈제네거보다는 콜린 패럴의 퀘이드가 공감하기도 쉬웠고요.

하지만 그래도 이게 계속 가지는 못합니다. 곧 데자뷔에 발목이 잡혀 버리죠. 원작의 데자뷔이기도 하지만 각본가 커트 위머가 참여한 전작들의 데자뷔이기도 합니다. 여전히 복잡한 이야기지만 이미 결과가 어떻게 나게 될 것인지 훤히 보이는 복잡함이니 흥이 안 나죠. 게다가 무대를 화성에서 지구로 옮겼는데도, 이야기는 더 비현실적이 되었습니다. 첫 번째 영화도 말이 안 되는 것 투성이기긴 했지만, SF 장르가 쌓아놓은 화성신화의 힘이 있어서 그리스 신화 보듯 봐줄 수 있었는데, 와이즈먼의 세계는 그냥 이상하기만 해요. 폴도 그렇고, 현장에서 총들고 뛰는 최종악당도 그렇고요.

데자뷔를 무시한다고 해도 이야기는 전작만 못합니다. 첫 번째 [토탈 리콜] 영화는 왔다갔다하는 이중 스파이의 플롯 속에서도 선명한 갈등이 있었죠. 하지만 렌 와이즈먼의 [토탈 리콜]에서 이 갈등은 흐릿하기만 합니다. 해피 엔딩은 그냥 해피 엔딩으로만 보이고요. 이 각본은 업그레이드가 아니라 다운그레이드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토탈 리콜]의 업데이트는 이상한 기획이었습니다. 아무리 자신의 기획에 자신이 있다고 해도, 업계 관계자나 관객들이 그 아이디어를 듣고 어리둥절해한다면, 다시 한 번 재고해보는 게 좋죠. 특히 그것이 나름 명작이라는 평판을 듣고 팬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영화의 리메이크라면요. 왜 하지 않아도 될 전쟁을 사서 합니까? (12/08/08) 

★★☆

기타등등
1. 아, 폴이 이상한 건 그것 하나만이 아니죠. 구조를 자세히 보세요. 엘리베이터가 한 대밖에 못 들어갑니다.  그 엘리베이터가 30층 짜리 건물 하나 크기라고 해도 그것 가지고 무얼하겠어요. 게다가 군사 이용 가능성은  더 형편없죠. 반대쪽에서 막아버리면 그만이거든요. 그렇게 되면 계속 진자운동을 하다가 결국 마찰 때문에 힘을 잃고 마침내 지구 중심에서... 물론 폴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거라니까요...

2. 사실 영화에서는 폴의 속도가 좀 빨라요. 제가 기억하기엔 반대쪽까지 가는 데에 17분인가 걸립니다. 그냥 엘리베이터를 떨어뜨릴 경우 47분 정도 걸린다더군요. 공기 저항을 무시한다면요. 하여간 제 기억이 맞아서 정말 17분이라면, 추가 에너지가 들어가 자유낙하 속도보다 더 빠르게 가속한다는 말이겠지요. 그럼 가속 방향 반대쪽으로 인공중력이 생길 겁니다. 중간엔 무중력 상태가 발생했다가 다시 반대쪽으로 인공중력이 생길 거고요. 그 정도면 영화에서와 비슷한 조건일 듯. 물론 "왜 그런 뻘짓을 하는 건데?"라는 질문은 여전하겠죠.

감독: Len Wiseman, 출연: Colin Farrell, Kate Beckinsale, Jessica Biel, Bryan Cranston, Bokeem Woodbine, Bill Nighy, John Cho, Will Yun Lee

IMDb http://www.imdb.com/title/tt1386703/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85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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