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이 유야의 [당신은 믿지 않겠지만]의 남자 주인공 츠요시는 얼마 전에 아내를 병으로 잃은 소설가입니다. 사업을 한다는 형 토오루를 찾아 아들 마노부와 함께 서울로 왔는데, 그만 형은 사기로 전재산을 날려버리지요. 빈털털이가 된 형제는 새 사업 아이템이 있다는 강릉으로 가는데 열차 안에서 한 때는 잘 나가는 아이돌이었지만 행사가수로 전락한 솔과 동생 봄, 오빠 정우와 엮이게 됩니다. 여기서부터 영화는 로드무비가 돼요.

최근엔 '한일합작'이라는 단순한 표현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영화들이 늘어나고 있지요. 예를 들어 [윤희에게]는 일본 로케이션과 일본인 배우가 영화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지만 '합작'은 아니지요. 이 영화는 조금 더 '합작'에 가깝습니다. 초반에 배우로도 나오는 박정범이 제작에 참여했고 한국인 스태프의 참여비중도 높아요. 하지만 '합작' 영화의 이벤트스러움은 그렇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런 섞임이 자연스러워진 시대가 된 것이지요.

영화는 좀 두 조각이 난 것 같습니다. 일본인 형제는 일본 영화스러운 드라마 상황에 빠진 일본인 캐릭터이고 솔, 봄, 정우 남매는 한국 독립영화스러운 상황에 빠진 한국인 캐릭터입니다. (한국 각본 윤색에는 배우로 출연한 최희서가 참여했다고 합니다) 같은 화면 안에 있을 때도 이들은 종종 기괴하게 따로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이들은 말도 잘 통하지 않지요. 최희서의 캐릭터는 기대와는 달리 일본어 구사자가 아니고, 여기서 두 언어를 모두 어느 수준으로 할 수 있는 사람은 오다기리 조가 연기한 토오루 정도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만국공통어 그러니까 브로큰 잉글리시가 등장해야 할 텐데, 이들은 한 시간이 지난 뒤에야 간신히 영어를 써요. 한국에 와서 꿋꿋하게 일본어만 쓰는 츠요시를 보면 "왜 저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이 괴상함과 불편함은 드라마를 끌어가는 동력입니다. 영화는 이 말이 안 통하는 사람들을 한군데에 몰아넣고 어떻게든 소통을 시키려고 하는데, 처음에는 말도 안 되는 것처럼 보였던 이 시도가 러닝타임이 흐르는 동안 조금씩 먹히고 결국 이들은 중간에 형성된 '한본'스러운 스타일 안에 섞입니다. 클라이맥스는 너무나도 일본스러워서 그 부분은 여전히 일본어에서 직역된 것 같지만 감독이 버릴 수 없는 것도 있는 법이죠.

한일관계를 다룬 아주 깊이 있는 영화라고 볼 수는 없어요. 하지만 각자의 영화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따로 있으니까요. 지금과 같은 시대엔 개인의 만남과 대화는 오히려 더 중요해졌고 [당신은 믿지 않겠지만]과 같은 영화의 시도는 여전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21/10/30)

★★★

기타등등
같은 이야기의 영화가 한국인 창작자 중심으로 만들어졌다면 지금의 분위기와는 완전히 다른 작품이 나왔을 거란 생각도 듭니다.


감독: Yuya Ishii, 배우: Sosuke Ikematsu, 최희서, Joe Odagiri, 김민재, 김예은, Ryo Sato, 장희령 Tateto Serizawa, 박정범 다른 제목: The Asian Angel

IMDb https://www.imdb.com/title/tt14059304/
Naver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aver?code=195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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