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

2012.11.25 23:03

DJUNA 조회 수:18069


강풀의 [26년] 영화화에 대한 기대가 높았습니다. 일부는 원작이 좋았기 때문이었죠. 일부는 지금도 뻔뻔스럽게 살아있는 학살자 전두환을 암살한다는 도전적인 아이디어와 내용 때문이었고요. 영화의 제작이 끊임없이 연기되는 동안 영화에 대한 기대는 일반적인 기대 이상의 것이 되었습니다. 이제 [26년]은 단순히 기다리는 영화가 아니라 만들기 위해 관객들 스스로가 힘을 합쳐야 하는 목표가 되었습니다. 그것이 표현된 것이 제작두레 프로젝트였고요. 엔드 크레딧을 빼곡하게 채운 만 개에 가까운 이름들이 그 증거입니다. 

몇 개월 전에 나왔던 [이웃사람]과는 달리 비교적 적극적인 각색을 택한 영화입니다.  인물 수가 축소되었고, 기존 인물들의 캐릭터 활용도 조금씩 바뀌거나 단순화되었으며, 중반 이후 스토리도 많이 다릅니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복잡한 구성도 단순화되었고요. 티저 예고편에 나오는 제1차 암살기도 장면은 그래도 원작에서 가장 비슷한 부분입니다.

이런 변형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됩니다. 일단 강풀의 원작은 연재물에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이 구성과 흐름을 극장용 영화에 그대로 적용하는 데에는 문제가 있죠. 제1차 암살기도의 액션이 원작보다 축소된 건 아쉽지만, 원래 계획보다 훨씬 열악했던 제작 환경도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80년 광주 장면을 애니메이션으로 처리한 선택도 나름 예술적 논리가 서 있습니다. 그리고 영화는 원작의 논리적 문제 중 몇 개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해결하려 시도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영화는 이번에도 익숙한 강풀 데자뷔에 빠집니다. 분명 만화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고 비슷한 장면들이 나오는데 효과나 감흥은 원작보다 훨씬 떨어지는 것입니다.  제1차 암살기도 이야기가 계속 나오는데, 이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입니다. 반토막 났기 때문이 아니라, 거의 같은 이야기를 하는데도 리듬과 타이밍이 나빠서 원작의 긴장감을 거의 느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과격한 각색을 한 후반은 원작이 갖고 있던 치밀한 구조의 서스펜스를 날려버립니다. 지나치게 흥분해있고 지나치게 감정적이라서 통제가 잘 되어 있지 않아요. 몇몇 캐릭터 변형은 이유를 알 수 없고, 본 액션과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 애니메이션 프롤로그의 기능도 떨어집니다.

결국 이건 원작과 충실하냐, 충실하지 않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강풀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 강풀이 웹툰 장르에서 그런 것처럼 완벽하게 매체를 통제하지 못하는 것이죠. 아마 이런 작업을 만족스럽게 해낼 수 있는 사람들은 분명 있을 겁니다. 단지 아직까지 강풀이 지금까지 그들을 만나지 못한 것뿐이죠.

여전히 [26년]에는 강풀의 원작에 바탕을 둔 기본 재미가 있습니다. 아마 원작을 보지 않은 관객들은 이를 더 좋게 볼 수 있겠지요. 결과가 어떻게 나왔건, 결국 영화가 나왔다는 사실 자체가 더 중요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 영화가 의도한 기능성 자체는 별 손상을 입지 않았을 거예요. 그래도 이보다 더 잘 만들 수도 있었을 텐데, 라는 아쉬움은 남지만요.  (12/11/25) 

★★☆

기타등등
이 영화에서 원작보다 좋은 부분이 하나 있으니, 영화가 끝나기 전에 (스포일러 시작) 전두환을 죽어라 팬다는 것이죠.(스포일러 끝.) 하지만 그 설정 때문에 후반 액션의 당위성이 약해져버리긴 합니다. 

감독: 조근현, 배우: 한혜진, 진구, 임슬옹, 배수빈, 이경영, 장광, 이미도,  다른 제목: 26 Years

Hancinema http://www.hancinema.net/korean_movie_26_Years.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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