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드 아틀라스 Cloud Atlas (2012)

2012.12.17 23:38

DJUNA 조회 수:30413


[클라우드 아틀라스]의 원작이 되는 데이비드 미첼의 동명장편소설은 내용보다 형식이 더 재미있는 책입니다.

이 작품은 여섯 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태평양을 항해하는 미국인 변호사의 일기, 20세기 초의 영국 동성애자 작곡가의 편지, 1970년대에 핵발전소와 관련된 음모를 추적하는 미국인 신문기자의 이야기를 다룬 추리소설, 21세기 초의 영국 출판업자가 강제로 감금된 양로원에서 탈출하는 이야기를 다룬 회고록, 미래의 한반도에서 독재정권과 맞서 싸운 복제인간과 나눈 대화록, 인류 문명이 멸망한 먼 미래의 하와이를 무대로 한 모험담.

미첼은 이 이야기들을 그냥 배열하는 대신 교묘하게 분해해서 하나로 조립합니다. 먼저 이 이야기들은 절반씩만 이야기된 뒤 다음 단편들로 넘어갑니다. 그러다 미래의 하와이 이야기에서 완전한 하나의 이야기가 끝나면 마치 지퍼를 올리듯, 남은 이야기들이 역순으로 하나씩 완성되지요. 그리고 이 이야기들의 주인공들은 모두 앞에 나온 에피소드를 책이나 영화의 형태로 접했습니다. 주인공들은 모두 혜성 모양의 모반을 갖고 있어서 이 이야기들이 모두 한 영혼의 환생 이야기라는 암시도 풍기고요.

소설의 주제는 광대합니다. 윤회와 인간관계를 통해 모든 것이 촘촘하게 연결된 우주를 보여주고, 환경 오염, 인종차별, 전쟁, 예술, 연대의 필요성, 과학과 예술의 가치에 대한 온갖 이야기를 하죠. 이 주제들을 하나로 묶어서 일관된 메시지를 만드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지만, 그보다 재미있는 것은 작가가 이 복잡한 형식 속에서 그럴싸하게 문체를 바꾸어가며 여섯 명의 화자를 다루는 테크닉 자체입니다.

그리 영화적인 소재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워쇼스키 남매와 톰 티크베어가 이 소설을 각색한 건 충분히 이해가능합니다. 원작 그대로 만드는 건 어렵습니다. 하지만 원작을 보다 촘촘하게 해체해서 교차편집을 통해 하나로 묶는 건 재미있는 일 같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는 아까와는 달리 굉장히 영화적 아이디어입니다.

결과물은 재미있는 난장판입니다. 여섯 개의 이야기들이 하나씩 등장할 때는 이게 뭔가 싶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들이 섞이기 시작하면 영화는 자기가 만든 리듬을 타기 시작하고 그 리듬은 영화가 거의 끝날 때까지 갑니다. 얼핏보면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들이 주제와 아이디어, 스토리의 흐름을 공유하며 클라이맥스로 돌진하는 것입니다. 여전히 난장판이지만 이는 3시간에 가까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지루하지 않은 난장판입니다.

영화는 이를 위해 온갖 곡예를 시도합니다. 그 중 가장 대담하며 무리한 시도는 배우들에게 일인다역을 맡긴 것입니다. 톰 행크스, 할리 베리, 존 스터지스, 휴 그랜트, 짐 브로드벤트, 벤 위쇼, 배두나 같은 배우들이 온갖 라텍스 분장을 하고 재등장합니다. 그 중 몇 개는 너무 그럴듯해서 놀랍고(벤 위쇼의 여장을 찾아보세요!), 몇 개는 어색하기 짝이 없으며, 그 중에서도 몇 개는 너무 엉터리라 모욕적입니다. 특히 미래의 한국에서 한국인 역할을 하는 서양 배우들을 보세요. 그들이 한국인으로 분장한 게 맞습니까? 암만 봐도 벌컨족으로 분장한 것처럼 보이는데요?

이런 시도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가장 성공적인 부분은 배우들이 분장을 비교적 덜 하고 자기에서 그리 벗어나지 않은 역할을 하고, 이야기가 작가(들)이 아는 영역에 머물 때입니다. 벤 위쇼는 젊은 음악가를 할 때 가장 좋고, 할리 베리는 70년대 저널리스트를 연기할 때 가장 좋고, 짐 브로드벤트는 불평쟁이 영국인 노인으로 나올 때 가장 좋으며, 배두나는 한국인 복제인간으로 나올 때 가장 좋습니다. 휴고 위빙은 온갖 악역들 다 하면서 여유롭게 즐기고 있고요. 여섯 개의 이야기 중 가장 난감한 건 미래의 한국을 다룬 에피소드인데... 아, 한국인 작가나 디자이너가 한 명이라도 붙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자유로운 상상력도 좋지만 그것도 재료가 제대로 되어야 가능한 거죠.

예상했던 대로 [클라우드 아틀라스]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립니다. [타임]에서는 워스트로 뽑혔고, 로저 이버트는 별 넷을 주었지요. 전 이 영화가 '완성도'로 평가될 수 있는 영화는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 그것도 가능하겠지만, 그럼 이미 예견되었던 길을 자기 의지없이 따라가는 것에 불과하겠죠.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완성된 예술작품으로 평가하기보다는 도달할 수 없는 불가능한 과정에 참여하며 그 전체를 체험하는 영화입니다. 제임스 다시와 짐 스터지스에게 그렇게 흉측한 동양인 분장을 시키지 않았다면 저도 그 체험을 더 즐길 수 있었을 텐데. (12/12/17)

★★★

기타등등
1. 차라리 유라시안 남성 배우를 기용해서 양쪽을 오가게 하는 방법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적어도 한국 관객들은 다니엘 헤니 같은 배우가 한국인 역할을 해도 그냥 관대하게 넘어갈 수 있었을 듯.

2. 자막에서는 출판업자 이야기에서 "소일런트 그린은 사람고기다!"를 "자유가 어쩌고..."하는 평범한 대사로 바꾸었던데, 그러면 안 되지 않습니까. 이 외침은 나중에 다른 에피소드와 중요한 연결고리가 되는데. 전 이런 식으로 관객들을 과보호하는 자막이 싫습니다.

3. 이 영화에서 가장 비판 받는 것은 '옐로우 페이스'지만, 사실 전 태평양 일지의 아투아를 아프리카계 배우가 맡은 것도 어색합니다. 아투아는 아프리카 출신 노예가 아니라 남태평양 원주민이니까요.

감독: Tom Tykwer, Andy Wachowski, Lana Wachowski, 배우: Tom Hanks, Halle Berry, Jim Broadbent, Hugo Weaving, Jim Sturgess, Doona Bae, Ben Whishaw, Keith David, James D'Arcy, Xun Zhou, David Gyasi, Susan Sarandon, Hugh Grant

IMDb http://www.imdb.com/title/tt1371111/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82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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