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프맨 The Wolfman (2010)

2010.02.16 12:02

DJUNA 조회 수:7861

 

조 존스턴의 [울프맨]은 제목이 거의 같은 1941년작 유니버설 호러영화의 리메이크죠. 원작은 많은 팬들을 거느리고 있지만 그래도 누군가 리메이크할 거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어쩔 수 없는 과도기적 작품이거든요. 잭 피어스의 특수분장은 지금 와서 보면 투박하기 짝이 없고 결정적으로 늑대인간의 활약이 너무 빈약하지요. 웬만한 보통 인간 살인마보다도 못합니다. 누군가 더 좋은 특수분장과 피를 동원해 지금 관객들을 만족시킬만한 영화를 만들고 싶어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새로운 영화의 내용은 어떤가요? 각본가 앤드루 케빈 워커와 데이빗 셀프는 쿠르트 시오드막이 쓴 오리지널 스토리에서 많은 부분을 가져왔습니다. 지금까지 미국에서 살았던 주인공 로렌스는 형이 죽자 고향인 영국으로 돌아오죠. 그는 집시촌 근처에서 늑대에게 물리고 늑대인간이 됩니다. 이 기둥 줄거리까지 바꾼다면 이 영화는 [울프맨]이 아니겠죠.

 

각본가들은 원작의 설정 위에 많은 것들을 새로 첨가했습니다. 우선 시대배경을 바꾸었어요. 원작의 시대배경은 현대(그러니까 1940년대)였지만 리메이크판의 시대배경은 빅토리아 시대인 1891년이죠. 여자 주인공 그웬은 이제 죽은 형 벤의 약혼녀이고 벤의 죽음도 단순한 사고가 아닙니다. 결정적으로 아빠 존 경의 캐릭터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클로드 레인즈가 연기한 선량한 시골 신사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지요. 정말로 나쁜 아빠입니다.

 

존 경이라는 변수가 등장하자 이야기는 중반 이후 원작과 전혀 달라집니다. 늑대인간의 활동이 시작되자마자 끝나버렸던 원작과는 달리 이 영화는 네 번의 보름달을 맞습니다. 죽어나가는 사람들도 엄청 많고 중간에는 런던에도 한 번 갑니다. (이 부분에서는 정말 [런던의 미국인 늑대인간]이에요.) 결정적으로, 운이 엄청나게 없는 선량한 사람들의 이야기였던 원작과는 달리 이 영화에서는 악의가 철철 흘러넘칩니다. 그것만으로 모자랐는지, 각본은 이 늑대인간 소동을 현대 연쇄살인마 현상과 연결시킵니다. 이 영화에서 스코틀랜드 야드 형사로 나오는 캐릭터 이름이 프랜시스 애벌라인이라는 것만 봐도 의도를 짐작할 수 있지요. ([프롬 헬]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잭 더 리퍼 사건을 맡았던 형사 이름은 프레드릭 애벌라인이었습니다. 이 영화의 애벌라인 형사도 실제 애벌라인 형사와 비슷한 경험이 있고요.)

 

그 결과 고풍스럽고 전통적인 비극이었던 원작과는 달리 영화는 날카롭고 신경질적인 느낌을 잔뜩 풍깁니다. 새 로렌스 탈보트는 당장 뉴욕의 정신분석의에게 달려가 아빠가 어쩌고, 엄마가 어쩌고, 하면서 하소연을 늘어놔야 어울릴 판인데... 아, 정말 슬프죠. 당시엔 정신분석학이 없었으니. 하여간 이 각본의 분위기는 앤드루 케빈 워커스럽습니다. 시대는 과거지만 이야기는 현대식이죠. 그의 [슬리피 할로우] 각본을 생각해보세요. 딱 그 분위기입니다. 워커는 시퀀스들이 다소 어색하게 묶인 채 서둘러 진행되는 분위기에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는 것 같아요. 편집 문제도 있겠지만 원래 각본이 어느 정도 그런 내용이었을 거라는 겁니다.

 

스타일 역시 [슬리피 할로우]에서 크게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유니버설 호러보다는 해머 호러의 분위기를 추구하고 있는데, 그게 은근히 신경질적이고 날카로우며, 뒤에서는 대니 앨프먼의 음악이 깔리는 것이죠. 액션 장면은 대부분 준수한 편입니다. 늑대인간의 모습이 조금씩 드러나는 과정의 흐름도 좋은 편이며 캐릭터 활용도 그 정도면 다채롭다고 할 수 있지요. 하지만 막판에 나오는 그웬과 늑대인간의 추격전은 조금 더 나아질 수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이것도 기본적으로는 각본 탓이죠. 지금은 논리나 동기 모두가 조금씩 빈약하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많아서 그 상황에서 충분히 얻을 수 있었던 서스펜스가 나오지 않아요.

 

릭 베이커의 특수효과는 어떨까요? 80년대에 나왔던 [런던의 미국인 늑대인간]이나 [하울링]에서 볼 수 있었던 특수분장의 과시는 기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물론 나올 건 다 나옵니다. 하지만 당시 영화에서 볼 수 있었던 "와, 난 이런 것도 하고 있어!" 식의 우쭐거림은 없습니다. 그냥 필요하니까 넣은 거죠. 늑대인간 묘사에는 전통적인 분장과 CG를 반반씩 섞여 있는데, 그 결과는 예상 외로 고풍스럽습니다. 좋은 뜻으로 하는 말입니다.

 

배우들. 전체적으로 원작보다 격이 높아 보이죠? 정말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원작보다 훨씬 연기할 만한 캐릭터들을 연기하고 있지요. 이들은 모두 더 복잡한 상황에서 더 고통스러운 비극을 겪어야 합니다. 영화가 베니시오 델 토로의 캐스팅을 정당화하기 위해 로렌스 탈보트에게 히스페닉계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란 연극배우 역할을 준 건 상당히 좋은 아이디어였습니다. 그 문화권의 원초적 비극성이랄까, 그런 게 부여되니까 영화에 독특한 힘이 들어가더라고요. 그 때문에 덤으로 해머 영화 분위기도 풍기고요. 에밀리 블런트의 그웬도 원작의 캐릭터보다 훨씬 살아있는데, 각본가가 이 캐릭터를 어떻게 활용할지 끝까지 확신하지 못한 건 유감스럽습니다. 클로드 레인즈와 안소니 홉킨즈의 연기를 일대일로 비교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홉킨즈가 오래간만에 흥미진진한 캐릭터를 연기한 건 그냥 사실이에요.

 

조 존스턴의 [울프맨]이 오리지널 영화를 대체하지는 않을 겁니다. 여러 가지 면에서 업그레이드 된 것은 맞지만 둘은 그냥 다른 영화들입니다. 하나는 거의 순진무구한 동화 같은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연쇄살인의 역사에서부터 정신분석에 이르기까지 온갖 이야기들이 잡다하게 섞여 있는 포스터모던한 스릴러죠.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여러분이 [슬리피 할로우]식의 고전 재해석에 부담이 없으시다면, 새 [울프맨]도 별 어려움 없이 즐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10/02/08)

 

★★★

 

기타등등

늑대머리 지팡이 나옵니다. 하지만 원작에서처럼 결정적인 역할은 못해요. 그냥 카메오 출연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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