킥 애스: 영웅의 탄생 Kick-Ass (2010)

2010.04.23 18:06

DJUNA 조회 수:16646


[킥 애스]의 도입부에서 주인공 데이브는 "왜 만화책 수퍼히어로가 되려고 하는 사람들이 없는가?"라고 묻습니다. 그건 잘못된 질문입니다. 지금도 세상 어딘가엔 쫄쫄이 수퍼히어로 복장을 하고 다니는 미친 사람들이 분명 주변 사람들을 귀찮게 하고 있을 테니 말이에요. 만화나 영화의 세계에서는 더욱 흔합니다. 미국 수퍼히어로물의 전통을 생각해보면 없는 게 이상하죠. 수퍼히어로가 되려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이미 오래 전에 패러디의 단계를 넘어섰습니다. [왓치맨]만 해도 그런 사람들을 다룬 진지한 드라마잖습니까. 이미 그 자체로 독자적인 세계가 된 것이죠.


그 때문에 전 데이브가 인터넷에서 수퍼히어로 커스튬을 사서 입고 킥 애스라는 수퍼히어로 놀이를 할 때, 별다른 감명을 받지 못했습니다. 데이브가 저러기 전에도 전 저런 걸 여러 번 봤어요. 그렇다고 필사적으로 수퍼히어로 짓을 하려는 그 녀석이 엄청나게 잘 이해되지도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절박한 동기가 부족했죠. 단지 심심한 너드 녀석의 자학적인 취미생활처럼 보였어요. 그 이후에 겪는 코미디나 멜로드라마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건 피터 파커가 패러디의 탈을 쓰지 않고도 훨씬 잘했어요.


그래도 전 그를 유튜브 스타로 만든 수퍼히어로 소동에는 나름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는 갱들에게 쫓기는 남자를 구해주기 위해 수퍼히어로 옷으로 갈아입고 싸움터로 뛰어들어 그 대신 죽도록 얻어맞지요. 그 남자 역시 갱들보다 특별히 나을 것 없는 다른 갱일 게 뻔한 데도 말입니다. 아무런 힘도 없으면서 일방적으로 당하는 이웃을 구하겠다고 뛰어들었다 망신을 당하는 남자의 모습은 감동적이지 않습니까?


유감스럽게도 킥 애스의 클라이막스는 바로 여기입니다. 곧 그는 다른 주인공들에게 자리를 양보해주고 말죠. 그 다른 주인공들은 비리경찰의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갔다가 그를 그 꼴로 만든 갱 두목 프랭크 다미코에게 복수를 맹세한 전직 형사 데몬 맥크레디와 그가 살인병기로 훈련시킨 딸 민디입니다. 그들은 빅 대디와 힛 걸이라는 수퍼히어로가 되어 다미코의 부하들을 학살하고 있죠.


네, 학살입니다. 빅 대디와 힛 걸은 배트맨처럼 인명을 중요시여기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들은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악당들을 칼로 자르고 총으로 쏘고 창으로 찍어 죽입니다. 이들의 액션은 [배트맨]보다 [킬 빌]에 더 가깝습니다. 아찔하지 않습니까? 11살밖에 안 된 귀여운 어린 소녀가 걸죽한 R등급 욕을 퍼부으면서 어른들을 학살하는 장면을 상상해보세요. 게다가 이런 거 아세요? 원작만화에 비하면 영화에 나오는 폭력 장면은 비교적 완화된 거랍니다.


여기서 고민이 시작됩니다. 힛 걸은 정말 매력적인 캐릭터입니다. 좋아할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해도 시선을 뗄 수가 없죠. 그리고 이 어린 아가씨가 벌이는 살육은 강한 시각적/정서적 쾌감을 동반합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가 이런 걸 보고 즐겨도 될까요? 여러분은 아마 이 질문을 위선적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제가, 어린아이가 어른들을 죽이는 이야기를 좋아한다는 건 비밀도 아니죠. 게다가 전 이런 이야기의 소비자일 뿐만 아니라 생산자이기도 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런 저에게도 거북하게 느껴지는 지점이 있고 힛 걸은 그 지점 근처를 아슬아슬하게 맴돌고 있습니다. 그 지점은 임의적인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그게 제 눈에 보인다는 사실은 밝히고 넘어가야겠습니다. 


영화의 주제와 스토리의 무게 중심도 아슬아슬한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 영화가 하려는 이야기는 무엇입니까? 킥 애스와 힛 걸이 하려는 이야기는 전혀 다릅니다. 기존 수퍼히어로의 규칙에 벗어나 있다는 점은 같지만 그것 이외엔 별 공통점이 없지요. 이들은 서로의 이야기를 특별히 살려주지도 않습니다. 힛 걸은 킥 애스가 없어도 자기 이야기를 충분히 할 수 있고 킥 애스의 성장기에 굳이 빅 대디나 힛 걸이 개입할 필요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영화는 자신이 패러디를 하고 있는 건지, 사디스틱한 수퍼히어로 주인공을 내세운 학살극을 하고 있는 건지, 확신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아마 원작도 그럴 수 있겠죠.


아마 이 모순되고 아귀가 맞아 떨어지지 않는 부분이야 말로 [킥 애스]의 매력일 겁니다. 만약 영화를 이루고 있는 개별 요소들을 펴고 정리해서 정공법으로 관객들에게 보여주었다면 영화는 덜 재미있었을... 아뇨, 사실 힛 걸 이야기는 더 재미있었을 수도 있었을 거예요. 여전히 전 이런 이야기를 봐도 되나,하고 고민했겠지만 그래도 신나게 즐겼을 겁니다. 얘는 주인공 자리에서 날 뛰는 게 더 좋았어요. 별 하는 일도 없는 킥 애스에게 타이틀 롤 자리와 결말을 넘겨주다니 이런 부당한 일이. (10/04/20)


★★★


기타등등

클로이 모리츠는 [렛 미 인] 리메이크 버전의 주연이기도 하죠. 학살은 계속됩니다. 


감독: Matthew Vaughn 출연: Aaron Johnson, Chloe Moretz, Nicolas Cage, Christopher Mintz-Plasse, Mark Strong, Lyndsy Fonseca, Sophie Wu, Clark Duke, Evan Pe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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