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틴 아메리카가 나오는 첫 번째 영화 [퍼스트 어벤저]는 제2차 세계대전을 무대로 한 고풍스러운 모험담이었죠. 주인공인 스티븐 로저스도 그에 어울리는 단순하고 소박한 영웅이었고요. 영화가 끝날 무렵 그는 1940년대에서 21세기로 훌쩍 점프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순식간에 21세기 사람이 된 것은 아닙니다.

그는 여전히 느릿느릿 세상에 적응합니다. 두 번째 영화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는 70년대 스타일 음모론 스릴러예요. 그가 과거로 시간여행을 한 건 아니니 여전히 시대배경은 21세기지만 기본 스타일과 아이디어는 당시 것이죠. 심지어 로버트 레드포드도 나와요. 그가 [콘돌의 3일]에서 맡았던 역과는 거리가 멀지만.

이 영화의 음모론은 그가 지구 평화를 위해 함께 일했던 조직 쉴드가 정체불명의 무리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고 그들이 세계정복을 위해 쉴드를 기반으로 한 무서운 계획을 짜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게 현실화되면 미국을 포함한 전세계 사람들의 자유와 프라이버시가 날아갈 뿐만 아니라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을 판입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로저스는 쫓기는 몸이 되고 그러는 동안 블랙 위도우와 조깅하다 만난 전직 군인의 도움을 받게 됩니다.

심각한 주제를 다루고 있긴 합니다만, 이 영화에서 70년대 당시 영화들이 갖고 있던 무게감을 기대하시면 곤란합니다. 아무리 진지한 척 해도, 영화는 여전히 온갖 만화책 슈퍼영웅들이 뛰노는 판타지 공간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세계와 아주 동떨어진 곳도 아니라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계속 삐걱거리는 어색함이 남습니다.

그래도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로 봤을 때, 이 영화는 논리적으로 맞습니다. 어벤저스에서 같이 일하는 다른 슈퍼영웅들과는 달리 로저스는 현실적인 영웅이죠. 아이언맨의 깐죽거림이나 토르의 멍청함 없이 시종일관 진지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이런 이야기에게 가장 맞는 주인공이죠. 액션도 진지하고 고민도 진지합니다.

[어벤저스] 영화도 아니면서 팀 플레이가 강한 영화입니다. [어벤저스] 영화와는 달리 상대적으로 작은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뭉쳐 목숨이 날아갈지도 모르는 모험을 하는 상황이라 오히려 더 좋더군요. 그래도 종종 왜 저들이 어벤저스의 다른 팀원들을 부르지 않는 건지 궁금했습니다. 아무리 쉴드 내부 사람들을 믿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다고 해도 블랙 위도우까지 받아들였다면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들은 많잖아요. 물론 그랬다면 또다른 [어벤저스] 영화가 되었기 때문이라는 게 진짜 답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지적했듯 액션 장면들이 좋습니다. 물론 물리법칙을 적당히 무시하는 만화책 주인공의 황당한 액션입니다. 하지만 캐릭터의 성격과 능력이 잘 반영되어 있고 무엇보다 긴 호흡의 리듬이 좋아서 긴박감은 상당합니다. 단지 후반부는 그렇게까지 길 필요가 없었던 거 같아요.

많이들 이 영화를 최근 마블 영화 중 최고라고들 하던데, 그 정도는 아닌 거 같습니다. 솔직히 1편보다 특별히 좋은 건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지금까지 나온 마블 영화 중 상위권이고 관객들이 이런 종류의 영화에서 기대하는 거의 모든 것들을 주고 있는 작품인 건 부인할 수 없겠습니다. (14/03/30)

★★★

기타등등
나타샤 로마노프/블랙 위도우의 설정은 아무리 봐도 수상쩍습니다. 무슨 계획이 있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작가들이 그냥 생각이 없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감독: Anthony Russo, Joe Russo, 출연: Chris Evans, Scarlett Johansson, Samuel L. Jackson, Anthony Mackie, Robert Redford, Sebastian Stan, Cobie Smulders, Dominic Cooper, Hayley Atwell, Emily VanCamp

IMDb http://www.imdb.com/title/tt1843866/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96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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