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 디 에어 Up in the Air (2009)

2010.02.25 14:40

DJUNA 조회 수:11810

 

월터 컨의 소설을 각색한 제이슨 라이트먼의 [인 디 에어]에 대해 설명하려면 일단 주인공의 직업에 대해 이야기해야 합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 라이언 빙엄은 해고전문가입니다. 그가 하는 일은 일년 내내 미국 전역을 비행기를 타고 돌아다니며 자기 손을 더럽히고 싶지 않은 사용자들을 대신해 직원들을 해고하는 것입니다. 이런 걸 전문가들에게 시킬 필요가 있을까요?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 그 직업의 가치를 인정하게 되더군요. 실직의 스트레스가 가족 구성원의 죽음이 주는 스트레스와 맞먹는 정도라면, 이런 상황에 익숙한 전문가가 개입해 그 과정 중 발생할 수 있는 사고를 방지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 아닐까요? 하긴 양들도 아마추어에게 학살당하느니 전문 도살자에게 죽기를 바랄 거예요.

 

라이언 빙엄의 삶은 그의 직업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는 집에 거의 머물지 않아요. 일년의 300일 이상을 출장길에서 보내죠. 그는 공항과 호텔의 삶이 익숙하고, 아주 가끔만 돌아오는 집이 오히려 불편합니다. 그의 인간관계도 그와 마찬가지예요. 그는 미혼이고 진지한 연애 같은 것은 믿지 않습니다. 심지어 그는 그의 짐없이 가벼운 삶을 옹호하는 강연으로 꽤 짭짤한 부수익을 거두고 있습니다. 전 그가 이런 라이프 스타일을 유지하며 죽는 날까지 평화롭게 지낼 수도 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나 소설가들은 이런 걸 바라지 않죠. 그들은 이런 캐릭터들의 삶을 뒤흔들고 그들이 익숙한 세계에서 빠져나오기를 바랍니다. 다 왜들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영화가 시작되면 그에게 몇 가지 변화가 일어납니다. 하나는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는 야무진 후배 나탈리 키너의 등장이죠. 나탈리는 일일이 비행기로 직장을 찾아다니며 해고를 하는 기존 방식을 버리고 화상 통신으로 사람들을 해고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안합니다. 당연히 그 변화를 반대하던 라이언은 나탈리를 데리고 돌아다니며 후배 교육을 시키는 입장에 몰리게 됩니다. 다른 하나는 출장길에 만난 알렉스 고란의 등장입니다. 라이언처럼 늘 출장 다니는 직업을 가진 알렉스는 거의 '여자 라이언'과 같은 존재로, 라이언은 처음으로 이 사람과 함께라면 보다 장기적인 로맨스가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게 됩니다.

 

다행스럽게도, 영화는 라이언에게 구체적인 정답을 주고 거기로 가라하지 않습니다. 그랬다면 정말 가짜 같았겠죠. 이런 데에 어떻게 정답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영화가 중요시하는 것은 결론이 아니라 과정입니다. 그리고 영화가 그리는 라이언 빙엄의 직업과 삶은 아주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영화는 어둡기 그지 없는 현대 미국사회의 경제 상황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기도 하지만 해고라는 과정을 통해 현대 인간관계에 대한 보다 보편적 은유를 제공해주기도 합니다. 비행기를 자기 집처럼 여기는 라이언의 라이프 스타일은 예외적이지만, 인간 관계의 무게를 짐처럼 여기면서도 의미 있는 관계의 가능성에 대해 문을 열어두고 있는 그의 태도는 그리 낯설지 않습니다.

 

[인 디 에어]는 코미디입니다. 상황을 과장하며 요란한 웃음을 유발하는 대신 주어진 세계를 정확하게 관찰하고 그 안에 숨겨져 있는 희극성을 정교하게 그리는 타입의 코미디죠. 깔끔하고 우아한 영화입니다. 대사는 위트가 넘치고 정곡을 찌르고 있으며 과한 부분이 거의 없어요.

 

이 영화에 나오는 배우들의 연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베라 파미가도 좋고 안나 켄드릭도 좋지만, 특히 조지 클루니에 대해서는 한 마디 해야겠습니다. 이 영화에서 클루니의 대단한 연기 변신을 기대하지 마세요. 솔직히 [마이클 클레이튼]의 클립과 이 영화의 클립을 섞어서 보여주면, 많은 사람들은 어느 영화에서 나왔는지 제대로 구별을 못할 겁니다. 하지만 연기 변신은 클루니의 목표도 아니고 영화의 목표도 아닙니다. 클루니의 목표는 자신의 개성과 이미지를 라이언 빙엄이라는 캐릭터 안에 융합시켜 최대한의 효과를 뽑아내는 것이고, 그는 거의 완벽하게 성공했습니다. 캐리 그랜트와 같은 클래식 할리우드 배우들이 그들의 대표작들에서 그랬던 것처럼 말이죠. (10/02/25)

 

★★★☆

 

기타등등

실제 세계에서는 아무리 아메리칸 에어라인을 타고 천만 마일을 날아도 영화 속에서 언급되는 것 같은 혜택은 없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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