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잔 콜린스의 [헝거게임] 3부작은 제가 도저히 적응할 수 없는 현대 미국 영 어덜트 SF의 영역에 속해있습니다.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극도로 인위적인 디스토피아가 배경이고, 여자주인공은 반드시 두 명 이상의 남자 사이에서 어장관리를 해야하며, 패션 디자이너가 과학자나 엔지니어보다 더 깊이 다루어지는 곳이죠. 이런 유행이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지 전 모르겠습니다. 너무 오래 끌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래도 [헝거게임]은 가지고 있는 재료와 공식이 가진 가능성을 비교적 잘 추려낸 편입니다. 여자 주인공의 캐릭터는 생생하고 같은 장르에 속한 다른 책들과 비교하면 설정도 어색하지 않으며 연애 이야기가 기본 액션을 많이 방해하지도 않죠. 여전히 장르의 한계가 보이긴 하지만... 아, 이러면 계속 비슷한 이야기 안을 빙빙 돌게 될 것 같군요.

[헝거게임: 캣칭 파이어]는 [헝거게임] 4부작의 2편입니다. 소설은 3부작이지만 영화는 마지막 작품인 [모킹제이]를 부풀려 두 편의 영화로 만든다고 하더군요. 그럴 필요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사람들도 생각이 있겠죠.

[캣칭 파이어]의 이야기는 전편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길을 따릅니다. 주인공 캣니스 에버딘은 헝거게임에서 승리했지만, 아직 그들이 살고 있는 디스토피아 세계는 유지되고 있지요. 이 세계가 붕괴되어야만 이야기가 온전하게 완성될 수 있는데, 어떻게 해야 그 붕괴 과정 안에 주인공 캣니스를 끼워넣을 수 있을까요?

[캣칭 파이어]에서는 전편에서 벌어진 일 때문에 캣니스가 캐피톨에 대한 저항을 상징하는 존재가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제가 보기엔 그 설명은 좀 약한 것 같지만 막 아카데미상을 타서 스타의 아우라가 번쩍거리는 제니퍼 로렌스가 스크린 앞에 나타나면 그게 꼭 틀린 말 같아 보이지도 않습니다.

영화의 절반은 캣니스와 일행이 헝거게임의 승자들이 거쳐야 하는 귀찮은 행사를 치르면서 그들이 사는 세계가 조금씩 변하는 과정을 그립니다. 캣니스는 영웅이 되고 세계 곳곳에 반항의 징조가 나타나죠. 중반을 넘어가면 스노우 대통령은 지금까지 살아남은 헝거게임의 승자들을 모아 올스타전을 여는데, 이 부분은 전편의 요약 반복처럼 보이긴 하지만 끝에 반전이 있습니다. 그렇게 대단한 반전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덕택에 전편의 반복에서 벗어날 수 있죠.

특별히 매력적인 이야기는 아닙니다. 러닝타임도 146분이나 되고요.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그렇게 지루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이야기는 심심할지 몰라도 서서히 붕괴되어 가는 디스토피아의 풍경과 주인공들에게 가해지는 압박의 서스펜스는 상당한 편입니다. 헝거게임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전편과 마찬가지로 수상쩍어 보이지만 그것들도 적절한 연출로 잘 덮어 커버했고요.

[헝거게임] 시리즈의 [제국의 역습]까지는 아닙니다. 무언가 새로운 걸 이룬 작품은 아니에요. 하지만 [캣칭 파이어]는 제니퍼 로렌스의 존재감과 할리우드 프로페셔널들의 성실한 작업이 만들어낸 괜찮은 결과물입니다. 남은 두 편의 영화도 이 정도의 완성도를 챙길 수 있다면 좋겠죠. (13/11/15)

★★★

기타등등
건대 입구 롯데 시네마에서 한 언론시사회에서 봤는데, 마스킹을 안 한 레터박스 상영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화면이 어두워질 때마다 그림이 붕 뜨고...


감독: Francis Lawrence, 배우: Jennifer Lawrence, Liam Hemsworth, Woody Harrelson, Josh Hutcherson, Donald Sutherland, Elizabeth Banks, Lenny Kravitz, Stanley Tucci, Philip Seymour Hoffman, Jeffrey Wright, Amanda Plummer, Jena Malone, Toby Jones

IMDb http://www.imdb.com/title/tt1951264/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94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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