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의 왕자: 시간의 모래]는 노골적인 이라크전 은유로 시작됩니다. 페르시아의 황제가 기도하러 떠나 있는 동안 왕자들은 적국에 무기를 판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신성한 도시 알라무트를 침공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뒤져봐도 있다는 대량살상무... 아니 비밀 무기창고는 보이지 않고, 알라무트를 방문한 돌아온 황제는 독살당합니다. 살인범의 누명을 뒤집어 쓴 다스탄 왕자는 알라무트의 공주 타미나와 함께 탈출한 뒤 숙부에게 자신의 무고함을 입증할 증거를 넘기려 하지만, 그 숙부를 연기하는 배우가 벤 킹즐리이니 그가 진범이 아닐 가능성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아마 여러분은 여기서부터 이 영화가 사극 판타지 버전 [그린 존]이 아닌가 의심할 것입니다. 정말 그럴 수도 있습니다. 왜 아니겠습니까. 원래 할리우드는 그렇게까지 적극적으로 이라크전을 지지한 적 없습니다. 오히려 반대의 경우가 더 많죠. [페르시아의 왕자]가 튄다면 그런 은유가 비정치적인 여름 블록버스터 안에 시치미 뚝 떼고 들어가 있다는 것입니다. 괴상하지만 전 이게 너무나 당연한 할리우드적 접근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 모든 이야기들은 일단 오락의 재료인 것입니다.


그런데, 페르시아의 음모가들이 알라무트에서 얻으려 했던 것은 무엇일까요. 시간의 모래입니다. 예고편에도 나오고 제목에도 언급되지만, 알라무트에는 신비한 모래가 있습니다. 이걸 적절하게 이용하면 제한된 시간여행을 할 수 있지요. 시간을 되돌려 미래의 기억을 가지고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이 악의 손에 넘어가면 큰일 납니다. 오용하면 지구가 멸망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의 은유일까요. 이라크전과 연결하면 석유겠지만, 다른 무엇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긴 알라무트 침공을 꼭 이라크전의 은유로만 읽으라는 법은 없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 역시 이걸 지금의 대한민국 실정에 맞추어 재해석할 수 있는 게 아닙니까? 원래 은유란 그 정도의 융통성은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시간여행은 다소 위태롭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왜 그런지는 여러분도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시간여행이란 필연적으로 역사개변과 연결되고 역사개변은 주인공이 영화 속에서 겪는 모험의 의미를 축소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는 윤리적 문제도 있습니다. 심각한 실수를 만회할 수 있는 지나치게 손쉬운 해결책을 제공해준다는 것이죠. 아마 이 영화의 정치적 의미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들은 이게 좋은 맺음이 아니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말기로 하죠. [페르시아의 왕자]의 목표는 이라크전과 그에 연결된 죄의식을 곱씹으려 하는 게 아니라, 고전 게임의 설정과 익스트림 스포츠를 결합한 제리 브룩하이머식 액션물을 관객들에게 선사하는 것입니다. 감독이 마이크 뉴웰이라고요? 브룩하이머의 개성이 훨씬 더 큽니다. 여러분은 영화를 보지 않아도 이 영화가 어떤 작품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극도로 요란한 액션이 특수효과와 함께 빽빽하게 들어차서 보다 보면 숨이 가쁘고 가끔은 종종 지겨워지기도 한 그런 영화입니다.


이런 영화들도 종종 예상하지 못했던 즐거움을 주기도 합니다. 오리지널 [캐리비언의 해적]이 바로 그런 경우였습니다. 브룩하이머의 놀이시설 원작 영화에서 잭 스패로우와 같은 캐릭터가 나올 수 있다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런 놀라움은 없습니다. 좋은 배우들이 제한된 소스로 프로페셔널한 연기를 보여주지만 거기서 멈춰요. 


[페르시아의 왕자]는 딱 브룩하이머식 블록버스터입니다. 즐거움보다는 자극과 흥분이 더 많은 영화죠. 만약 이런 영화가 취향이고 기대치가 정확하다면 여러분은 만족하실 겁니다. 브룩하이머 영화로서 [페르시아의 왕자]는 특별히 빠지는 구석이 없으니까요. 아니신 분들은... 아니, 그러게 불평하기 전에 왜 이 영화를 봤던 겁니까? (10/05/16)


★★★


기타등등

이 영화의 페르시아 제국을 실제 역사와 일치시키려는 시도는 허망합니다.


감독: Mike Newell 출연: Jake Gyllenhaal, Gemma Arterton, Ben Kingsley, Alfred Molina, Steve Toussaint, Toby Kebbell, Richard Coyle, Ronald Pickup, Reece Ritch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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