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거 게임: 판엠의 불꽃]의 원작은 수잔 콜린스의 동명 영 어덜트 소설. 원래는 3부작 시리즈의 첫 권인데, 영화사에서는 이를 4부작으로 만들 생각이라는군요. 어떻게 만들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1편이 이렇게 성공했으니 1편만 만들고 끝날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요샌 첫 편만 만들어놓고 끝난 시리즈 지망생들이 많아요. 대부분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영화들이지만 그래도 보면 많이 아쉽습니다.

한국에서는 판타지라고 홍보하고 있지만, SF입니다. 대재난 이후 미국은 캐피톨이라는 수도 도시와 열 두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는 판엠이란 국가가 되어 있는데, 전에 판엠에 대한 반란을 시도했다는 이유로, 각 구역에서는 매년 남자애, 여자애 한 명씩을 추첨으로 뽑아 판엠에 보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기다리고 있는 건 단 한 명이 살아남을 때까지 서로와 싸워야 하는 헝거게임이죠. 주인공 캣니스는 12구역의 대표로 뽑힌 동생을 대신해서 헝거게임에 자원합니다.

[배틀 로얄]과 많이 닮았지요. 하지만 수잔 콜린스는 책을 내기 전까지 [배틀 로얄]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진실여부는 알 수 없죠. 하지만 충분히 가능한 일 같습니다. 표절이나 모방을 통하지 않더라도 수렴 가능한 이야기예요. 어차피 둘 다 로마 검투사 게임에 기원하고 있잖습니까. 그리고 전 책을 읽는 동안, 보다 미국적인 전통에 대해 생각하게 되더군요. 셜리 잭슨의 [제비뽑기]나 리처드 코넬의 [가장 위험한 게임]과 같은 작품들 말입니다. 작가는 미국 리얼리티 프로그램과 미노타우르스 신화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던데 그럴 수도 있고.

어차피 기본 설정을 떠나면 상당히 다른 이야기입니다. 애들을 극단적인 생존게임으로 몰아넣는 SF인 건 같지만, 비판 대상도 다르고 분위기도 다르죠. [배틀 로얄]과는 달리 [헝거게임]에서는 미국 대중 문화의 천박함에 대한 비판이 강하고, 십대 (여성) 독자나 관객들을 노린 로맨스에도 상당한 비중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배틀 로얄]에 비해 많이 말랑말랑한 작품입니다. 우선 헝거게임 자체는 작품의 절반 정도밖에 차지하고 있지 않아요. 그리고 잔인함이나 폭력은 딱 영 어덜트 물 수준입니다. 영화는 소설을 더 약화시켰고요. 이런 설정에서 필연적으로 마주칠 수밖에 없는 딜레마도 편리하게 넘어가고 있어요. 수위 조절을 위해서였다고 생각하지만 몇몇 부분은 너무 편리하기만 해서 솔직히 이건 좀 아니다 싶습니다. 아이들의 전략과 전술도 좀 건성이고요. 하지만 이런 내용이라면 보다 많은 독자/관객들을 만날 수 있겠죠.

소설에 비해 영화는 이야기의 뿌리가 된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관음주의적 속성에 더 밀접하게 접근하고 있습니다. 소설이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사람의 수기라면, 영화는 리얼리티 프로그램 자체나 다름없죠. 물론 영화의 시점은 영화가 보여주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시점을 그대로 따르고 있지는 않습니다만, 둘의 차이점은 그리 크지 않아요. 보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고통과 공포를 즐기는 건 다를 게 없으니까. 단지 영화는 한 겹 위에 서서 그 사실을 공공연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다르죠.

가볍게 휙휙 넘어가는 이 영화에서 무게 중심을 잡아주는 배우는 주인공 캣니스를 연기한 제니퍼 로렌스입니다. 굉장히 험한 오디션을 뚫고 이 역을 따냈다고 홍보를 하던데, [윈터스 본]을 본 관객들이라면 '오디션이 과연 필요했나'라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윈터스 본] 자체가 [헝거게임]을 위한 오디션이나 다름없으니까요. 그리고 로렌스의 연기나 태도는 [윈터스 본]이나 [헝거게임]이나 다를 게 없습니다. 사실적이고 진지하고 무엇보다 위엄이 있어요. 영화가 뭔가 말이 안 되는 방향으로 흐르는 동안에도 관객들이 별 의심 없이 그 흐름을 따라간다면 그건 관객들이 배우의 진실성을 믿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로렌스도 좋지만, 사실 캣니스도 좋은 캐릭터입니다. 자기 앞가림을 자기가 다 하고,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 대한 책임감도 있으며, 그 정도면 생각도 깊고, 생존력도 강한데다가 무엇보다 자존심이라는 게 있습니다. 벨라 스완 따위는 캣니스 발꿈치에도 못 미칩니다. 이 정도면 [트와일라잇] 시리즈에 대한 만족스러운 해독제입니다. (12/03/31) 

★★★

기타등등
사냥 장면이 거의 안 나옵니다. 다시 말해 동물이 죽는 장면이 거의 없단 말이죠. 원작의  내용과 주인공의 특기를 생각해보면 좀 괴상합니다. 하지만 정작 나왔다면 저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감독: Gary Ross, 출연: Jennifer Lawrence, Josh Hutcherson, Liam Hemsworth, Willow Shields, Amandla Stenberg, Elizabeth Banks, Woody Harrelson, Wes Bentley, Stanley Tucci, Toby Jones, Donald Sutherland

IMDb http://www.imdb.com/title/tt1392170/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79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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