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언어 Lingua Franca (2019)

2021.02.28 23:58

DJUNA 조회 수:2039


[사랑의 언어]는 이사벨 산도발의 첫 장편영화입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이사벨 산도발이라는 이름으로 만든 첫 번째 장편영화지요. 산도발의 첫 장편영화는 2009년에 자신이 감독한 동명 단편을 각색한 2011년작 [세뇨리타]인데, 당시 산도발의 이름은 빈센트 산도발이었습니다. [사랑의 언어]는 산도발이 성전환수술을 받고 이자벨 산도발로 이름을 바꾼 뒤 만든 첫 영화예요.

[세뇨리타]와 마찬가지로 산도발 자신이 주연입니다. 이 영화에서는 올리비아라는 필리핀인 미등록 노동자예요. 치매에 걸린 올가라는 러시아계 할머니의 도우미로 일하면서 계약결혼을 해줄 남자를 찾고 있지요. 그런데 올가의 손자인 알렉스가 올리비아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합니다. 둘은 연애를 시작하지만 알렉스는 올리비아가 트렌스잰더라는 사실을 모릅니다.

거의 원형적인 이야기지요. 트랜스잰더를 다룬 전통적인 멜로드라마이고, 미등록 노동자들에 대한 전통적인 사회 비판 드라마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의 큰 줄기는 크게 새롭다고 할 수 없어요. 이런 이야기를 살리는 방법은 두 가지인데, 그 이야기를 뒤집어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거나 이를 충실하게 따르면서 소재를 최대한 깊이 파는 것입니다.

산도발은 후자를 택했습니다. 실제로도 트랜스잰더 여성이고, 미등록 노동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트럼프 시대 미국에서 필리핀인으로 오래 거주해 왔으니, 남들은 관념적으로만 상상할 것들을 보다 깊게 볼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 결과 만들어진 영화는 거의 데이빗 린의 [밀회]처럼 고전적이면서도 묵직한 영화입니다.

이슈를 감출 생각이 없는 영화입니다. 트럼프 시대 미국에서 비백인 이주 노동자들이 어떤 스트레스를 받고 어떤 공포 속에서 살고 있는지 대놓고 보여주지요. 이를 위해 라디오나 텔레비전 방송을 보여주는 직설적인 도구를 쓰기도 합니다. 하긴 단순하고 폭압적인 시대를 그리면서 은근할 필요는 없지요.

하지만 영화의 핵심은 로맨스에 있습니다. [사랑의 언어]는 새로운 몸으로 자신의 욕망과 사랑을 추구하는 트랜스 여성의 내면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당사자성'이라는 단어가 이만큼 와닿는 영화는 최근 들어 본 적이 없는 거 같아요. 올리비아의 이야기는 아름다운만큼 정치적이기도 합니다. 다른 세계의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예술작품처럼 훌륭한 정치적 도구는 없지요. (21/02/28)

★★★☆

기타등등
얼마 전에 뜬 산도발의 단편영화를 보세요. 영화 모양을 한 미우미우 광고이긴한데. 여기서도 산도발은 주연입니다. 이 영화의 에로틱한 즐거움은 이 영화와 자연스럽게 이어지기도 해요.
https://www.youtube.com/watch?v=PIk1xDY-8CA


감독: Isabel Sandoval, 배우: Isabel Sandoval, Lynn Cohen, Eamon Farren, Lev Gorn, Ivory Aquino, P.J. Boudousque,

IMDb https://www.imdb.com/title/tt8943224/
Naver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89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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