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워 바디 (2018)

2018.12.17 00:41

DJUNA 조회 수:6921


최희서가 신작 [아워 바디] 이야기를 인터뷰에서 밝혔을 때, 전 이 영화가 무척 건전한 작품이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행정고시를 준비하느라 몸과 마음이 망가진 주인공이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조금씩 삶의 활기를 찾아간다'라는 내용이라뇨. 이 정도면 여자들의 몸과 건강에 대해 요새 충무로 영화가 하지 않는 이야기를 들려줄 수도 있다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어, 그런데 영화가 처음 소개된 토론토의 반응이 예상과 달랐습니다. 제가 기대한 영화는 [위험한 독신녀]와 비교되는 내용이 아니었는데요? 게다가 부산에서는 이 영화를 LGBT로 분류하고 있었습니다. 그걸 믿고 영화를 봤다가 속았다는 반응이 뜨자 전 더 궁금해졌어요.

서독제에서 결국 이 영화를 보았는데, 정말 처음 예상과는 전혀 다른 영화였습니다. 맨 위의 소개글은 거짓말이 아니었어요. 정말로 8년에 걸친 행정고시 공부로 피폐해진 주인공이 달리기를 시작하는 영화가 맞았습니다. 하지만 주인공 자영이 달리기를 시작한 계기는 길에서 우연히 달리기를 하는 현주를 보고 나서였지요. 자영은 현주에게 매료되고 집착이 시작됩니다.

영화가 정말로 [위험한 독신녀]의 길을 가는 건 아닙니다. 자영은 그런 식으로 위험한 사람이 아니에요. 하지만 자영과 현주의 관계는 그렇게까지 정상이 아니며 긍정적이지도 않습니다. 자영은 철저하게 현주의 몸과 외모, 이미지만을 사랑해요. 웬만한 이성애자 남자들보다 더 대놓고 현주의 몸을 대상화하고 있죠. 단지 자영에게 현주는 선망과 모방의 대상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 때문에 [위험한 독신녀]의 비교가 불려나온 거죠) 이 욕망은 분명히 선을 그어 정의할 수 없는 모양으로 발전합니다.

그 결과 영화는 사람들이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지점에서 상상하기 쉽지 않은 이야기를 하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이 기대했던 동성애 로맨스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여자의 몸을 욕망하는 여자의 이야기이고, 여자의 건강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인 거 맞는데, 결코 건강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작정하고 예쁜 여자들을 관음하는 영화지만 그 느낌은 이상할 정도로 신선하고, 여자들의 우정에 대한 이야기인 건 맞는데 그 방향과 의미는 이런 종류의 영화가 가는 길과는 전혀 다릅니다. 그 결과는 의외로 히치콕적입니다. 그 중에서도 [현기증]이요. 심지어 영화는 어느 정도 귀신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초자연현상이 나오지 않는 귀신 이야기요. 하긴 [현기증]도 그런 이야기였던가요.

자영은 배우에게 도전적이기고 하고 그만큼 힘든 역이기도 합니다. 완벽하게 정리되거나 설명되는 캐릭터가 아니거든요. 종종 자영 자신도 자신의 행동을 설명하지 못해 애를 먹는데, 영화를 보다보면 그 난처함이 이해가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내내 자영을 따라갈 수 있었던 것은 최희서가 [박열]에서 맛을 보았던 것 이상으로 능력 있는 배우였기 때문이죠. 미래가 점점 더 기대됩니다. 물론 이 정도로 배우를 활용할 수 있는 작품들이 따라주어야 하겠지만. (18/12/17)

★★★☆

기타등등
영화 중반 이후부터 나오는 자영의 회사 근무 묘사는 감독 자신의 경험이 반영된 것 같더군요.


감독: 한가람, 배우: 최희서, 안지혜, 김정영, 이재인, 최준영, 노수산나, 다른 제목: Our Body

IMDb https://www.imdb.com/title/tt8922682/
Naver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79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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