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령의 수녀원 The Devil’s Doorway (2018)

2018.10.30 11:33

DJUNA 조회 수:6685


[악령의 수녀원]이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더 넌] 짝퉁 영화처럼 들리지만 아니고요. 더 진지하고 더 잘 만든 영화입니다. 가톨릭 교회를 판타지 설정처럼 쓰고 있는 [더 넌]과는 성격이 전혀 달라요. [악령의 수녀원]은 가톨릭 교회가 현실세계 억압의 일부였던 사람들이 만든 영화입니다.

영화의 무대는 '막달레나 세탁소'입니다. '막달레나 수용소'라고도 불리는 곳. 아일래드 가톨릭 교회의 주도로 만들어진, 소위 '몸을 버린 여자들'을 강제로 수용했던 곳이죠. 200년 넘는 세월 동안 엄청난 인권 침해의 현장이었고, 2002년에 피터 뮬런이 이 소재로 [막달레나 시스터즈]라는 영화를 만든 적 있습니다. 이 영화의 이야기도 끔찍했는데, 실제 수용소의 잔혹함은 다 담지 못했다고요.

영화의 배경은 1960년대입니다. 막달레나 세탁소 중 한 곳에서 피눈물을 흘리는 성모상이 발견됩니다. 바티칸에서는 두 신부를 파견하고, 이들 중 한 명은 16밀리 카메라를 들고 있습니다. 이들이 찍은 한 시간 분량의 필름과 약간의 녹음 테이프로 구성되어 있는 영화예요. 파운드 푸티지물이죠.

재료들은 익숙해요. 가톨릭 페티시는 몇 십년 동안 호러 영화계를 지배했으니까요. [엑소시스트]의 많은 재료들이 이 영화에도 있습니다. 파운드 푸티지물의 클리셰도 만만치 않게 섞여 있습니다. 이 역시 당연한 일이겠죠. 하지만 이 재료들에 아일랜드 가톨릭 교회에 대한 진지한 비판과 분노가 들어가면서 영화는 기존의 가톨릭 호러물과 조금 다른 모양을 갖추게 됩니다.

영화가 흘러가면서 가톨릭의 여성 혐오 시스템의 구조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이 영화의 수녀들은 대부분 끔찍한 사람들이에요. 그에 비하면 두 신부는 그럭저럭 호감이 가고요. 하지만 이 수녀들은 가톨릭 교회가 만들어낸 여성 혐오 시스템의 밑바닥으로 밀려난 사람들이기도 해요. 피해자들과 가해자들로 구성된 이 여자들의 세계에 들어온 두 남자가 느끼는 불편함은 이 영화의 중요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감독이 여성이기 때문에 이게 더 눈에 들어오는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전 요새 파운드 푸티지물에 조금 피로감을 느끼고 있는 편인데, 이 영화는 비교적 잘 보았습니다. 16밀리 필름의 질감이 일반적인 디지털 화면과는 다른 고풍스러운 기괴함을 풍기고 있기도 하고, 장르 설정 한계 안에서 편집과 촬영을 꽤 잘 했어요. 단지 영화의 결말은 익숙한 파운드 푸티지의 공식을 지나치게 충실하게 따르고 있어서 맥이 좀 풀렸습니다. 현실 세계의 악이 위에 버티고 있고 거기서 충분한 재료들이 자라고 있는데, 굳이 익숙한 미로 속으로 들어갈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요. (18/10/30)

★★★

기타등등
VOD로 풀렸습니다. 요샌 이런 걸 디지털 개봉이라고 하지요.


감독: Aislinn Clarke, 배우: Lalor Roddy, Ciaran Flynn, Helena Bereen, Lauren Coe

IMDb https://www.imdb.com/title/tt6793280/
Naver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75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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