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팅게일 The Nightingale (2018)

2020.12.31 21:32

DJUNA 조회 수:13117


[나이팅게일]은 [바바둑]의 감독 제니퍼 켄트의 차기작입니다. 제목의 '나이팅게일'은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이 아니라 주인공 클레어 캐롤의 별명이예요. 초반에 언급이 있습니다.

영화는 강간복수극처럼 보입니다. 태즈매니아에 사는 클레어는 사악한 호킨스 중위에게 강간당하고 남편과 아기를 잃습니다. 살인 직후 호킨스는 승진을 요청하기 위해 론스턴으로 떠나요. 클레어는 복수하기 위해 뒤를 따르는데, 당연히 혼자는 못갑니다. 원주민 길잡이 빌리를 고용할 수밖에 없지요.

태즈매니아라는 배경으로 시대를 알 수 있습니다. 1820년대 중반부터 1830년 이전이에요. 원주민과 영국인 이주민 사이의 전쟁이 시작되었고, 결국 이는 대학살로 이어집니다. 1830년이 끝날 무렵 살아남은 원주민은 75명이었고 1876년, 태즈매니아 원주민은 말 그대로 멸종당하고 맙니다.

60년대 이후 할리우드 수정주의 서부극에서 볼 수 있는 백인의 죄의식이 이 영화에 있습니다. 단지 눈높이가 조금 더 밑입니다. 클레어 캐롤은 당시 오스트레일리아에 살았던 백인 중 가장 밑이에요. 죄수가 되어 오스트레일리아로 끌려 온 빈곤 계층이고 여성이고 아일랜드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주민 빌리보다는 한참 위이고 클레어도 자신이 얼마나 인종차별적으로 빌리를 대하고 있는지 의식하지 못합니다.

강간복수극으로 시작한 영화는 둘의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오스트레일리아라는 나라의 지울 수 없는 원죄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클레어의 복수는 여전히 중요하지만 한 민족이 말 그대로 말살당하는 현장에서는 의미가 축소될 수밖에 없지요. 여기서부터 강간복수극이라는 장르도 흐려집니다. 클레어가 호킨스와 일당들을 모두 잔인하게 도륙해도 뭐랄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장르적 쾌락을 위해 소비될 수 없어요. 영화는 다들 기대하는 복수 직전에 갑자기 뒤로 빠지고 다른 길로 갑니다. 이 영화의 폭력 대부분은 쾌락을 위해 존재하지 않아요. 복수의 카타르시스를 즐기러 온 관객들은 실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건 의도적이예요. 그렇다고 최소한의 권선징악도 포기한다는 건 아니지만요.

보기 힘든 영화로 알려져 있는데, 전 [바바둑]이 더 힘들었습니다. [바바둑]은 정말 탈출할 수 없는 연옥과 같은 영화였지요. [나이팅게일]에서 클레어를 복수로 몰고가는 초반의 폭력은 당연히 고통스럽습니다. 더 크고 끔찍한 이야기를 하고 있고요. 단지 [바바둑] 때와는 달리 달리 주인공의 고통을 오감으로 체험하는 대신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역사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생각의 끝은 '이 모든 게 너무 늦었다'라는 것이지요. 이 이야기에서 연민의 대상인 태즈매니아 원주민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20/12/31)

★★★☆

기타등등
화면비율은 1.33:1입니다. 정확한 마스킹을 해주는 곳이 어딘가에 있겠지요. 이런 영화들은 오히려 텔레비전으로 볼 때 더 화면이 좋을 수도 있습니다.


감독: Jennifer Kent, 배우: Aisling Franciosi, Baykali Ganambarr, Damon Herriman, Charlie Jampijinpa Brown, Harry Greenwood, Claire Jones, Michael Sheasby, Addison Christie, Maya Christie, Sam Claflin, Eloise Winestock, Ewen Leslie, Matthew Barker

IMDb https://www.imdb.com/title/tt4068576/
Naver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78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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