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들의 골짜기 Malnazidos (2020)

2022.09.10 23:47

DJUNA 조회 수:1146


별 사전 정보 없이 [죽은 자들의 골짜기]라는 좀비 영화를 넷플릭스에서 봤습니다. 스페인 영화더라고요. 감독인 하비에르 루이스 칼데라는 코미디 그 중에서도 장르 패러디가 장기인 모양이고요. 이 영화는 코미디가 아닙니다. 코미디 요소가 없는 건 아니지만 이 정도면 정통 장르물이에요. 원작 소설이 있다고 합니다. 마누엘 마르틴 페레라스라는 작가가 2012년에 쓴 [Noche de Difuntos Del 38]라는 작품입니다. 인기 있는 책이라 비디오 게임 각색물도 영화보다 먼저 나왔대요.

시대배경은 1938년. 그러니까 스페인 내전이 프랑코 일당의 승리로 끝나기 직전입니다. 기업 변호사 출신인 주인공 한은 프랑코 쪽 반란군의 장교인데, 프랑코의 친구인 판사에게 밉보여 총살당하기 직전에 삼촌인 장군의 빽으로 간신히 목숨을 건집니다. 대신 모 연대장에게 기밀 서류를 전달하는 위험한 임무를 맡아요. 운전병과 함께 목적지로 가던 두 사람은 공화파의 민병대에게 사로잡힙니다. 그런데 그게 문제가 아니었어요. 그 동네엔 좀비들이 들끓고 있었어요.

왜 거기 좀비들이 있을까? 그거야 근처에 나치가 있으니까요. 척 봐도 악당인 게 분명한 나치 장교가 뭔가 수상쩍은 실험을 근처 스페인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익숙한 나치 좀비물 장르가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해서 은근슬쩍 스페인 영화에 들어온 겁니다. 스페인에도 자체 좀비물의 전통이 있지만 여기선 나치 좀비물의 무게가 조금 더 강해보이고요.

아주 무서운 영화 같은 건 아닙니다. 그냥 자기 일을 부지런하게 하는 좀비 액션물이에요. 보통 때 같았다면 함께 하지 않았을 사람들이 좀비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팀이 되고, 한 명씩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이 장르에서 익숙한 공식의 이야기가 순서대로 진행됩니다. 이 익숙함에 차별성을 부여하는 것이 스페인 내전이라는 구체적인 역사지요.

영화는 내전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글쎄요. 당연히 나치들은 나쁘죠. 프랑코 일당들도 악당이고. 그런데 영화는 이에 맞서는 극렬 공산주의자 캐릭터도 그렇게 좋게 보지 못하고 소련도 수상쩍게 봅니다. 남은 건 어쩌다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며 싸우게 된 그 중간의 어정쩡한 스페인 사람들이에요. 이 느낌은 친숙하잖아요. 우리가 한국전 이야기 때 자주 써먹던 재료니까. 그래서 영화를 보면 종종 [동막골] 생각이 나요.

당연히 안전하게 타협적인 영화입니다. 하지만 전 이 캐릭터들이 먹힌다고 생각했어요. 다들 영화 속에서 일어날 법한 일들을 할 법한 사람들이에요. 가톨릭 수녀에서부터 무슬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한 무리에 넣어놓고 인간 드라마를 만들어내는 과정은 안전해보였지만 괜찮았다고 봤습니다. (역시 한국전 설정을 넣고 상상해보시면 쉽게 그림이 그려져요.) 하지만 조금 더 야심을 갖고 단호하게 이 전쟁을 들여다 봤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보는 것이죠. 좀비를 풀어놓고 그래도 되냐고요? 되지 않겠어요? (22/09/10)

★★☆

기타등등
코로나 때문에 계속 개봉이 뒤로 밀렸다 올해 개봉된 수많은 영화 중 하나입니다.


감독: Javier Ruiz Caldera, 배우: Miki Esparbé, Aura Garrido, Luis Callejo, Álvaro Cervantes, Jesús Carroza and María Botto, 다른 제목: Valley of the Dead

IMDb https://www.imdb.com/title/tt10127708/
Naver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aver?code=219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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