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코니 무비 Film balkonowy (2021)

2022.09.25 23:54

DJUNA 조회 수:1230


폴란드 감독 파벨 로진스키는 자기 집 발코니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걸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이걸 영화로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지요. 카메라와 녹음장비를 발코니로 가져온 로진스키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대고 말을 걸어요. "인생이란 무엇일까요?" 같은 뻔한 질문을 던지면서요. 아, 이건 코로나 바이러스 이전 영화입니다. 그 시기에 나올 법한 아이디어지만 그 때였다면 이런 영화는 못 만들어졌죠. 일단 사람들의 얼굴을 볼 수 없으니까요.

처음엔 사람들도 어리둥절해 합니다. 하지만 900일 동안 발코니에 죽치고 앉아 말을 걸다보니 사람들은 서서히 로진스키의 존재에 익숙해집니다. 심지어 동네의 명물이 되어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들도 생기지요. 그러다 보니 서서히 의미있는 대화들이 하나씩 쌓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몇몇 사람들은 고정 캐릭터가 돼요.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사람은 막 감옥에서 나와 로진스키의 집 앞에서 구걸하는 전과자입니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이 사람의 이야기가 조금씩 발전하는 걸 볼 수 있어요.

로진스키의 동네는 나른한 주택가로, 방문객이나 관광객은 거의 찾을 수 없는 곳입니다. 집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 대부분은 딱 그 동네스러워요. 하지만 질문을 던지고 대답을 듣고 얼굴을 익히다 보면, 그 흔한 사람들이 생각보다 훨씬 다채롭고 입체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국기를 휘감고 다니는 극우 꼴통부터 40년 동안 같이 살았던 파트너를 잃은 동성애자 할아버지에 이르는 이 다양한 사람들이 하나의 영화 속 흐름 안에 모이면 전체 태피스트리는 더욱 재미있어져요.

무엇보다 대화의 재미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이게 될까?;라는 생각이 들긴 해요. '인생이란 무엇인가?'는 솔직히 별 재미없는 질문이고요. 하지만 로진스키와 마을 사람들은 서서히 이 고정된 상황에서 대화의 기술을 개발해 갑니다. 그러자 예측하지 못했던 온갖 이야기들이 흘러나오고 심지어 '인생이란 무언인가'에 대한 그럴싸한 대답을 하는 사람들도 생깁니다.

긴 흐름의 음악을 듣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영화입니다. 2년 반 동안 찍었지만 영화는 일 년 조금 안 되는 기간 동안 계절이 흘러가는 것처럼 짜여졌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인터뷰들은 교묘한 리듬감을 느낄 수 있게 배치되었어요. 그리고 사람들만큼이나 이 리듬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건 로진스키의 핏불인 롤리타를 포함한 수많은 개들입니다. 로진스키는 잠시 개를 데리고 다니는 사람들만 뽑아 영화를 만들 생각도 했다고요. (22/09/25)

★★★☆

기타등등
롤리타는 영화가 끝나고 세상을 떴답니다. 영화 속에서는 임신해서 강아지들을 낳았는데, 그 중 한 마리가 엄마의 뒤를 이어 감독의 집에 살고 있대요.


감독: Pawel Lozinski, 다른 제목: The Balcony Movie

IMDb https://www.imdb.com/title/tt15180952/
Naver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aver?code=206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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