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너 헤르조크의 [불 속의 연인: 카티아와 모리스 크래프트를 위한 진혼곡]은 여러 모로 헤르조크의 이전 영화 [그리즐리 맨]을 연상시키는 작품입니다. 카메라를 든 어떤 사람(들)이 매우 헤르조크식 환경 속에서 헤르조크식 촬영을 하면서 수많은 푸티지를 남기다가 결국 그 때문에 죽습니다. 헤르조크는 그 푸티지를 모아 편집하고 헤르조크 내레이션을 붙여 영화로 만듭니다.

이 영화에서 푸티지를 남긴 사람들은 카티아와 모리스 크라프트입니다. 알사스 출신의 지질학자 커플이에요. 두 사람은 결혼 이후 전세계의 화산들을 찾아다니며 연구를 하면서 수많은 사진과 영화를 찍었습니다. 이들은 수많은 다큐멘터리나 책에 사용되었지만, 이들은 이 푸티지를 직접 편집해 영화로 만들지는 않았지요. 그리고 1991년 6월 3일, 일본 운젠화산 폭발 때 모두 목숨을 잃었습니다.

두 사람은 [그리즐리 맨]의 티모시 트레드웰처럼 정신 나간 사람들은 아닙니다. 위험한 환경 속에서 위험한 모험을 즐겼지만 자기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정확히 아는 전문가였지요. 그 때문에 헤르조크는 이들을 비판하지는 않습니다. 이들의 인생을 자세히 이야기하지도 않아요. 헤르조크의 관심사는 두 사람이 찍은 필름 자체입니다.

헤르조크는 철저하게 이 두 사람을 동료 영화인으로 봅니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면서 이 사람들이 예술가로서 성장하는 과정을 담담하게 기술하지요. 처음엔 카메라맨이 따라다녔습니다. 그러나 서툴게나마 직접 16밀리 카메라를 들고 영상을 찍기 시작했고 여기엔 점점 예술적 예술과 야심이 들어가게 됩니다. 과학은 줄어들고 자연과 인간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요.

그리고 어느 단계에 오르면 헤르조크는 영상이 직접 이야기를 하게 퇴장합니다. 포레와 바그너의 음악이 깔리면서 스크린을 가득 채운 화산의 이미지들이 쏟아지고 그 때부터는 내용이고 뭐고 좀 넋나간 상태로 영화를 보게 되더군요. 네, 자연은 거대하고 무섭고 아름답습니다.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그래도 이런 걸 보여주는 이런 영화를 보면 그 뻔한 이야기를 중얼거리며 감탄할 수밖에 없지요. (22/09/26)

★★★☆

기타등등
카티아와 모리스의 일생을 담은 다큐멘터리 한 편이 거의 같은 시기에 나왔습니다. 이 영화는 이들의 일생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라 도사의 [Fire of Love]라는 영화이고 이번 부산에서도 상영합니다. 헤르조크가 자기 영화에서 두 사람의 일생 이야기를 최대한 줄이려 한 건 이 영화를 의식해서가 아니었을까요? 아, 비스타 비율에 16밀리 필름의 화면을 맞춘 헤르조크의 영화와는 달리 도사의 영화는 원래 푸티지의 화면 비율을 유지하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감독: Werner Herzog, 출연: Katia Krafft, Maurice Krafft,

IMDb https://www.imdb.com/title/tt19383190/
Naver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aver?code=220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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