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희야 (2014)

2014.05.13 03:32

DJUNA 조회 수:15717


경찰대 출신 엘리트 영남은 사생활의 문제로 외딴 바닷가 마을 파출소장으로 좌천됩니다. 1년만 조용히 일하다 복귀할 생각이었는데, 이 계획은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틀어져 버립니다. 집에서는 의붓아버지 용하에게 학대당하고 학교에서는 왕따 피해자인 이웃집 소녀 도희가 자꾸 눈에 밟히는 거죠. 영남은 용하로부터 도희를 보호하려 하지만 그게 쉽지 않아요. 마을의 유일한 젊은 남자인 용하는 마을의 대소사를 챙기고 외국인 노동자를 조달하는 브로커로, 그가 없다면 마을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용하가 무슨 일을 저지르건 간섭할 생각이 없고 괜히 남의 일에 간섭하는 젊은 여자가 귀찮습니다. 영남은 가까스로 도희를 자기 집으로 데려오지만 그것도 결코 최종 해결책이 아니었죠. 생전 처음 자신을 아껴주는 사람을 만난 도희는 영남에게 집착하고, 우연히 영남의 비밀을 알아낸 용하는 그를 미끼로 영남을 협박하려 합니다.

[도희야]는 [11]과 [영향 아래 있는 남자]의 감독 정주리의 첫 장편영화입니다. 주인공의 성격이나 직업은 역시 난처한 일에 휘말린 여자 파출소장을 다룬 단편 [11]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들어보니 감독은 실제로 이런 위치에 있는 사람을 안다고 하더군요. 캐릭터까지 가져왔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외딴 마을에서 학대당하는 여자아이의 이야기라니, 암담하다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도희가 이 마을의 폭력에 노출된 유일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말하면 더 암담해질까요. 하지만 [도희야]는 [한공주]식의 암담함과 억울함으로 관객들을 끌고가지는 않습니다. 이야기의 종류가 조금 달라요.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운없이 바닥으로 떨어진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주변의 '보통 사람들'과 같을 수 없는 사람들이죠. 이유야 조금씩 다르겠지만요. 예를 들어 마을 사람들에게 잡혀 노예처럼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 총각은 순전히 외국인이라는 이름만으로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다른 이유로 도희도, 영남도 '보통 사람'은 아니죠. 심지어 영남은 이 영화에서 가장 선량하고 원칙적인 인물이지만 상관없습니다.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들은 따돌림당하고 괴롭힘을 당해도 되는 존재가 됩니다.

[도희야]는 이런 '보통 사람들'이 소수에게 가하는 폭력에 대한 영화입니다. 인물소개만 보면 용하는 형편없는 악당이죠. 하지만 여기에서 가장 끔찍한 것은 그가 이 마을에서 평범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가 그런 폭력을 가할 수 있는 것은 그와 같은 가치관을 공유하는 이웃 사람들이 그의 범죄를 묵인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옹호하고 있기 때문이죠. 이건 굳이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닐 겁니다. 어디를 가도 비슷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고 그런 공동체와 관련된 이야기들도 많죠. 거의 장르화되었다고 할 정도로.

[도희야]가 이런 세계를 다룬 다른 영화들과 다르다면, 사실주의적 체념으로 끝나는 대신 장르적 해결을 시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 영화가 다루는 이야기는 서스펜스/추리물에 속해있어요.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처럼 노골적이지는 않고 그렇다고 뜻밖의 비밀을 숨기고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형식적으로는 필름 느와르의 전형에 가까운 추리물입니다. 전 감독이 조금 더 솔직해져서 이 장르 공식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도 잠시 했어요. 그랬다면 후반부의 이야기가 더 잘 풀렸을 거예요.

영화의 주인공은 영남이지만 이 이야기를 이끄는 구심점은 도희라는 아이의 캐릭터입니다. 전 보는 동안 카슨 맥컬러스의 [결혼식의 멤버]에 나오는 프랭키 생각이 좀 나더군요. 단지 그 아이를 끔찍한 조건에 떨어뜨려 어린 팜므 파탈로 만든 다음 세 배 정도 위험하게 만들었다고 상상하시면 됩니다. 여러분이 영남의 위치에 있다면 이 아이가 많이 무서웠을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아이에게는 진부한 현실의 밧줄로 만들어진 고르디아스의 매듭을 끊을 힘이 있습니다.

캐스팅이 좋습니다. 송새벽은 악역이 처음이라지만 물처럼 캐릭터와 함께 흐릅니다. 용하가 과시적인 장르 악당이 아닌 불쾌한 보통 사람이기 때문에 배우의 익숙한 매너리즘이 캐릭터에 잘 녹아들 수 있었던 거죠. 송새벽과는 달리 배두나와 김새론은 기본의 이미지와 경력을 교묘하게 활용하며 각각의 캐릭터를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배우들이 이전에도 근처까지는 갔던 부분에서 한 발자국 정도 더 나아가 그들이 이전까지 못 했던 영역을 넣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 배우 모두 서로에 대한 긴장감과 화학반응이 상당합니다. 몇몇 장면에서는 그 결과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동시에 엉뚱해서 당황스러울 정도죠. (14/05/13)

★★★☆

기타등등
집에 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의외로 감정이입을 잘 할 거란 생각이 듭니다. 이 영화에서 영남은 길잃은 고양이를 주워와 키우는 사람들이 마주치는 거의 모든 일들을 겪어요. 몇몇 장면들은 그냥 고양이로 바꾸어도 통할 정도.


감독: 정주리, 출연: 배두나, 김새론, 송새벽, 장희진, 문성근, 공명, 다른 제목: A Girl at My Door

IMDb http://www.imdb.com/title/tt3661798/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15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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