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가 라이트의 신작 [라스트 나잇 인 소호]의 주인공 엘리는 1960년대에 집착하는 패션 디자이너 지망생입니다. 런던 패션 학교에 장학생으로 입학한 엘리는 잠시 머물던 기숙사를 떠나 일인실과 욕실을 제공하는 하숙집에 머물게 되는데요. 여기서 밤마다 1960년대를 사는 샌디라는 여자에 대한 꿈을 꾸게 됩니다. 엘리는 샌디에 영감을 받아 디자인 작업을 시작하지만 그 꿈은 점점 악몽으로 변해가요.

왜 악몽일까요? 그건 1960년대 런던이 미모와 재능만 믿고 연예인이 되기 위해 찾아온 젊은 여자에게 결코 만만한 곳이 아니었기 때문이지요. 이런 주인공들이 나오는 수많은 멜로드라마에서 다루었던 거의 모든 나쁜 일들이 샌디에게 일어납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어느 날, 이 영화를 호러물로 만들어 줄 끔찍한 사건이 터져요. 그것을 목격한 엘리는 패닉 상태에 빠지고요.

주제와 내용만 보면 이 이야기는 겉으로는 번지르르했던 1960년대 영국 백인 남자들의 여성 착취와 폭력을 다룬 페미니스트 텍스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1960년대 영국의 대중문화에 매료되어 있던 에드가 라이트에게 이는 비판적인 자성이기도 할 거예요. 단지 영화는 이를 정치적으로 드러낼 영화적 언어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여전히 라이트에겐 당시 영국 문화와 6,70년대 이탈리아 호러 영화의 스타일을 페티시적으로 재현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그 때문에 옛 영화의 페스티시적인 특성이 드러난 주제를 억누르기도 해요. 그렇다고 해서 라이트가 그려내는 이 현란스러운 구경거리를 피할 생각이 드는 건 또 아닙니다.

그렇게까지 피가 많이 튀는 영화는 아닙니다. 적어도 영화가 과시적으로 호러스러운 폭력을 보여주는 장면은 단 하나밖에 없어요. 대신 영화는 살인 행위보다 엘리가 점점 현실감각을 잃으면서 느끼는 혼란감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칼질이 (본격적으로) 안 나오기는 하지만 영화는 여전히 이탈리아 지알로, 특히 다리오 아르젠토 영화에서 많은 것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현란한 지알로 컬러로 번뜩이는 화면도 그렇지만 스토리 전개 방식도 그렇지요. 특히 반전을 만드는 방식과 마무리는 그냥 아르젠토 적이에요. 에드가 라이트와 크리스티 윌슨-케언즈의 각본은 아르젠토 것보다 낫고요. 그리고 의외로 괜찮은 카타르시스를 주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스토리 구조상 안 그럴 거 같았는데 그랬어요. (21/12/02)

★★★

기타등등
엘리의 바텐더 경험은 크리스티 윌슨-케언즈 자신의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요.


감독: Edgar Wright, 배우: Thomasin McKenzie, Anya Taylor-Joy, Matt Smith, Michael Ajao, Terence Stamp, Diana Rigg,

IMDb https://www.imdb.com/title/tt9639470/
Naver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aver?code=191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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